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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감서 이념은 좀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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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감서 이념은 좀 빼라

입력
200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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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회가 출범한 후 첫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지금까지의 추세를 보면 국정감사가 정책에 대한 감사라는 목적보다는 정치공세의 장으로 변한 과거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국정감사를 참신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거나 정책 집행의 오류를 밝히는 장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소모적인 정치논쟁의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과거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정감사는 국가기밀 유출, 좌파 교과서 그리고 서울시 행정수도이전 관제데모 등 색깔론, 폭로전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으며 여야 원내대표가 모여 생산적인 국감을 진행하자는 합의를 하였지만 큰 효과는 없다.지금까지 여야의 행태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상당한 면역성이 길러진 듯 특별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재경위의 재경부에 대한 국정감사 풍경은 국정감사에 대한 실망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서민들의 생활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따질 수 있는가장 중요한 무대인 재경위 국감마저 정치공세의 장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야당 의원들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반시장적이고 좌파적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이에 대해 부총리는 정부의 경제정책은 조지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책에 가깝다는 변명으로 대응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문제 제기와 답변은 치솟는 집값, 증가하는 실업,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재정 적자와 조세 부담 등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경제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가로막고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만증가시킬 것이다.

경제 정책이 이념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 정책이 기본적으로는 시장경제에 기초하고 있었지만 어떤 순수한 이념적인 모델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저발전국가에서 발전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경제 정책의 선택이 국내외 환경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식 발전모델도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보다는 훨씬 강하였고 시장주의적 경제 정책으로 해석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심각해지고 있는 소득 격차와 실업 문제를 고려하면 이제 분배정책에 대해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즉 시장 경제에서도 시장에만 맡겨두었을 경우 해결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의 범위와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들에 대해 이념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려는 것은 우리의 경제, 사회 현실을 도외시한 접근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가 어떤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책들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고 상호 조화가 잘 되어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TV 토론에서도 경제 정책 문제는 중요한 쟁점으로 되고 있으나 논의 방식은 우리와 크게 다르다.

부시와 존 캐리 후보는 자신의 정책을 뒷받침할 예산의 규모를 제시하고 그러한 정책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부담을 증가시키거나 혹은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 논쟁했다. 상대방의 경제 철학에 대한 비판도 이러한 구체적인 논점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예산 문제를 다루는 우리 국회가 여전히 정치 공세, 호통치기, 그리고 답변에는 관심이 없는 한건주의식 구태를 벗지 못한 국정감사를 계속한다면 국정감사 무용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축소론을 부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부여한 소중한 권리마저 스스로 걷어차는 국회에 무엇을 더 기대할수 있겠는가?

이남주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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