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상서’가 아니라 ‘부모님전 상서’에요.”‘애정의 조건’ 후속으로 16일부터 방송되는 KBS 2TV 주말드라마 ‘부모님전상서’의 제작발표회장, 김수현(61) 작가가 사회자의 인사말을 대뜸 자른다.
드라마 제목을 잘못 띄어 읽었다는 것이다. 무엇 하나 대충 넘어가는 법이없고, 아니다 싶으면 대놓고 쓴 소리를 해대는 매섭고 깐깐한 성품이 금세 드러난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이효리가 자신의 작품 ‘눈꽃’에 출연하는 문제에 대해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고 내놓고 반대한 그답다.
소문대로 연습장에 수시로 출몰해 ‘연기지도’도 하냐는 물음에, 그는 “나 그냥 연기학원 차려 버릴까?”라고 반문한다. 그간 쓴 드라마는 죄다 김수현 냄새가 너무 짙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인정옥 드라마는 인정옥이, 노희경 드라마는 노희경이 떠오르지 않아요?
김수현이라고 뭐 다른가요”라고 쏘아붙인다. “근데 내가 나이 들어서 되게 맘 좋아지지 않았수? 이런 자리에도 나와 기자들이랑 이야기도 다 하고?”
스스로 ‘늙었다’고 했지만,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말투와 생생한 비유로 무장한 입심뿐 아니라 필력도 건재하다. 1968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해 ‘사랑과 야망’ ‘청춘의 덫’ ‘배반의 장미’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등 숱한 인기 드라마를 내놓은 것도모자라 또 주말극을 맡았으니.
SBS ‘완전한 사랑’ 이후 10개월 만에 ‘부모님전상서’로 컴백한 그는 “드라마가 우리를 너무 피곤하게 한다”는 말로 세태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아, 또 이런 이야기 했다가 ‘김수현이 다른 드라마 씹었다’고 다 나오는 거 아닌지 몰라. 네티즌들이 ‘노망난 할매’다 뭐다 이러는 판에. 그렇지만 내 나이가 되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녜요?”
불만의 근거는 구체적이고 명징했다. “처음 시작하는 드라마는 웬만하면 한번은 봐요. 그런데 2회를 못 넘겨. 지능이 60밖에 안되는 사람이 큰 회사의 후계자가 되고 삼각, 오각, 육각관계가 막 나오잖아요. 도무지 말이안돼. 개연성도 없고 시차조차도 안 맞아요.
나는 트집이 많은 사람이라 못 봐요. 그런데 시청자들은 굉장히 인심이 좋은가 봐요. 그런 드라마가 시청률이 무지막지하게 나오잖아요.”
자폐증을 앓는 아들(유승호)을 둔 맏딸 현실(김희애)를 중심으로 교감선생님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 ‘부모님전상서’는 그런 드라마 작법에 대한 김수현식 불만 표출인 셈. “드라마들이 아무 이유도 없고 가치도 없이 들떠 있고, 세상을 사는 우리는 희망없이 지쳐 있는 이 때 시청자들이 촉촉하고 아름답게 젖어들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어떨까 해요.”
그러기 위해서 그는 김수현표 속사포 말투도, 남편의 외도와 이혼으로 이어지는 독한 내용도 포기했다. “화려하고 템포 빠른 무대전환만 보다가 따분하고 졸릴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바꾸지 않겠어요. 차분하게 마음 먹은 데로 갈 거에요.”
‘완전한 사랑’에 이어 다시 한번 김희애를 작품의 간판으로 내세운 데 대해서 그는 “나는 언제나 베스트를 원한다. 김희애씨 역할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김희애를 ‘김수현 사단’에 편입시키지 않았던 이유도 그다웠다.“희애씨가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하는 걸 보잖아요. 그땐 속속들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젊었을 때는 생긴 거나 발음이 너무 차돌맹이 같아서 나와 안 맞아 보였고.”
얼마 전부터 밤새워 작업하는 올빼미 생활에서 벗어나 아침 7시면 일어나저녁 먹기 전까지 글을 쓴다는 그녀는 36년간 드라마 작가로서 ‘군림’할수 있었던 것에 대해 “적성에 맞았고 구매자가 있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었기에 이때까지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작품세계를 정리할 계획이 없는가 묻자, 예의 특유의 냉소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 얘긴 언제 은퇴하냐는 말로 들리는데? 마음 먹어지면 하시라도 하는거죠. 고만 좀 나와 줬으면 하는 사람들 많다는 건 아는데, 그렇다고 내가그 사람들 신경 쓰느라 글 안 쓸 수는 없는거 아녜요?” 그러길래 김수현은 김수현이다.
/김대성기자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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