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차별에 전국 1만8,000여명 '통한의 세월'*"한센병 바로 알리기·보상특별법 제정 지원 노력"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은 이제 만성이 됐습니다. 하지만 타고 가는 버스와 열차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지거나 식당에서 밥이 떨어져 팔 수 없다고 거절 당할 때는 차라리 죽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11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소회의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박재승)가 개최한 ‘한센병(나병) 인권보고대회’에 모인 200여명의 환자들은 그간 쌓인 설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차별과 경멸의 눈초리를 받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한센병 환자 2세들은 부모를 숨기며 고아 아닌 고아로 지냅니다. 얼마 전에는 한 아들이 결혼식 전날에야 부모를 찾아와 결혼 사실을 알려 부모와 아들이 부둥켜안고 눈물바다를 이룬 일도 있습니다.”
현재 국내 한센병 환자는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비롯, 전국 88개 정착촌에 1만8,000여명 정도. 평균연령이 70세에 가까운 노인들이고 새로운 환자 발병률은 1년에 2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전하는 편견과 차별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아이들은 지척에 학교를 두고서도 친구 없이 지내거나 정착촌에서 다니는 것을 숨기기 위해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를 두세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대중 목욕탕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가도 응급치료만 받고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한다.
한센병 환자 자치 모임인 한빛복지협회 회장 임두성씨는 “1991년 이른바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 당시 언론이 한센병 환자 정착촌 지하실에 암매장됐다고 대서특필한 사실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 한센병 인권소위원회를 설치, 실태를 조사해 온 변협은 이날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고, 일제시대 소록도로 강제 수용된 환자 1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보상금 소송을 대행키로 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특별법을 제정해 강제 수용됐던 자국 환자들에 대해서는 1인당 800만~1,400만엔씩 보상했지만 소록도 주민에 대해서는 “내국인이 아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변협 인원위원장 박영립 변호사는 “이제는 사회가 한센병 환자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할 때”라며 “이들의 인권 실태를 알려나가는 한편 사회적 차별을 보상해 줄 수 있는 특별법 제정 운동을 함께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센병 위원장 박찬운 변호사는 “일반인의 경우 95% 이상 자연 항체를 가지고 있어 한센병 환자와 접촉해도 전염될 가능성이 없다”며 “한센병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 국민들의 오해를 푸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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