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실무자의 착오입니다.”, “노력중입니다만 아직.”11일 국회 보건복지위의 국정감사를 받은 대한적십자사 간부들은 여야 의원들의 계속된 질타에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진땀을 흘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기자의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이날 국감에선 ‘인도’와 ‘봉사’, ‘공평’이라는 적십자 정신이 얼마나 퇴색했는지가 절절히 확인했다. 열린우리당 이기우 의원은 “수혈용 혈액이 부족하다면서 암이나 백혈병 환자에게 필수적인 혈소판채혈보다는 돈벌이가 되는 혈장채혈에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현애자의원도 “적십자사가 혈소판 채혈을 등한시하고 병원도 혈소판 공여자 모집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소중한 피를 이용해 수익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적십자사를 비판했다.
잇따른 혈액안전사고에 대한 무대책도 도마에 올랐다. 우리당 장향숙 의원은 “빈번한 혈액사고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전문인력 부족이 수 차례 지적됐는데도 여전히 16개 지역혈액원장 가운데 의사가 한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안전불감증을 질타했다. “헌혈한 고등학생 4명 중 1명의 피가부적격”(한나라당 정화원 의원), “여군의 부적격 비율이 57%”(우리당 유필우 의원) 등 헌혈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도 줄을 이었다.
급기야는 “일부 적십자병원이 직원과 가족에 대해 무료진료까지 실시하는 등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우리당 김선미 의원), “사병들이 헌혈한 대가로 대대장에게 금열쇠를 만들어줬다더라”(한나라당 곽성문 의원)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적십자사측은 항변을 하지 못했다.
국감장 밖에서 만난 적십자사의 한 간부는 “각종 재해구호활동, 이산가족찾기, 북한 및 재외동포 돕기, 지역보건활동 등이 혈액 문제에 묻혀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는 혈액사업을 적십자사에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일부 의원의 제안에 대해선 “여기저기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가당치 않은 ‘현실론’을 폈다. 적십자 정신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하루였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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