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10명으로 일군 국산화 결실세계 최고의 마이크로 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당초 희망은 접어야 했다. 내겐 마이크로 컴퓨터가 보물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겨우 차린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전자계산기 국산화 연구실은 규모가 턱없이 작았다. 10명의 연구원에 연구비도 쥐꼬리만 했다.
공무원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그들 탓을 할 수도 없었다. 당시 국내에는 마이크로 컴퓨터의 형님 격인 미니 컴퓨터 조차 드문 게 현실이었다. 컴퓨터 보다는 저임 노동력을 앞세운 굴뚝 산업에 비교우위를 둬야 한다는 관료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제한된 자원으로 개발할 수 있는 작은 프로젝트를 궁리했다. 그 중 하나가 자동학습기였다. 컴퓨터에 녹음기 등 여러 기능을 더하고 소프트웨어를 넣었다. 한 마디로 컴퓨터가 교사 역할을 대신하는 기계였다.
자동학습기는 정수 직업훈련소 학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자동화하는 데 실제 응용됐다. 이 기계는 학습내용을 설명하고 학생이 내용을 이해했는지 테스트한 다음 바른 답을 하면 다음 진도를 나가고, 틀린 답을 대면 더 자세히 설명해주는 기능을 갖췄다. 국산화 연구실이 문을 연지 7개월 정도 지난 1977년 초였다.
지금 PC와 비교하면 이는 컴퓨터의 당연한 기능이지만 당시엔 상당한 수준의 신개발 프로젝트였다. 그땐 컴퓨터라고 하면 주전산기는 적어도 100만 달러, 미니컴퓨터도 30만 달러에 달할 만큼 비쌌다. 그런 시절 개인이 사서 쓸 정도의 가격대로 시스템을 만든 건 ‘사건’이었다.
당시엔 또 지금처럼 주변 장치가 흔하지 않아 이를 꾸미는데 많은 고생을 했다. 예를 들어 디스플레이 대신 TV를 쓰고 그림과 음성 저장장치로는 VTR과 녹음 테이프를 사용했다.
이런 마당에 자동학습기가 나왔으니 언론도 크게 주목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은 끊겼고 기업들도 장사가 되기에는 이르다고 여겼는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기계는 이런 이유로 대량생산에는 실패했지만 마이크로 컴퓨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됐다.
다른 프로젝트는 컴퓨터 단말기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경제기획원과 전매청에 단말기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KIST의 대형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이었다. 외제를 대체할 단말기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당시 KIST는 미국 CDC사의 주전산기를 갖고 있었다. 단말기도 CDC 제품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 엄청나게 비쌌다. 나는 이 때문에 국산화를 결심했다. 그래서 당시 미국에서 팔리고 있던 가장 작은 미니 컴퓨터 본체와 라인 프린터를 부품 형태로 사와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도입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의 부품을 이용하되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들어가면 기계를 더욱 효과적으로 지능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기계들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자동차 안에도 열 개 정도의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들어있다. 엔진을 점화하는 일이라든지, 트랜스미션을 자동화하는 일 등을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하고 있다.
KIST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중 내게 고무적인 일이 하나 생겼다. OB맥주의 정수창 사장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100명의 연구원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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