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정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가장 잘못되어 온 정책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답을 들 수 있지만 정답으로 1순위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정책이다.그렇다. 우리는 교육을 나라의 백 년을 세우는 중요한 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백 년은커녕 정권만 바뀌면, 아니 한 정권 내에서도 장관만 바뀌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것이 바로 우리의 교육제도, 입시제도이다. 사실 지난 20년 동안 입시제도가 가장 여러 번 바뀐 나라를 골라 상을 준다면 단연코 금메달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금까지의 수능 위주의 입시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내신을 중심으로 한 수시모집이라는 제도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고 2008년도부터는 내신의 비중을 더욱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부 명문 사립대학들이 내신 평가에 있어서 강남의 고등학교를 우대하는 등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실시해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특히 이와 관련, 고려해야 할 점은 현재 고등학교 진학이 교육 평준화 정책에 의해 일부 특목고를 제외하고는 입시가 아니라 주거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고교등급제 하에서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가난한 학생은 강남의 8학군에 살 수 없는데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내신에서 차별을 받아 온 것이다.
이 점에서 고교등급제는 단순한 등급제가 아니라 명문 대학 입학 기회가 부모의 사회계급적 지위에 의해 결정되는 일종의 고교계급제, 교육계급제에 다름 아니다.
사실 교육 평준화는 교육 기회의 균등화라는 이상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 면에서는 역설적으로 교육계급화를 초래해 왔다. 교육 평준화 이전에는 가난한 집 자식도 머리가 좋고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는 중고등학교 입시를 통해 명문교에 가서 좋은 교사 밑에서 좋은 학생들과 공부해 소위 명문대를 갈 수 있었다.
그런데 평준화 이후에는 아무리 머리가 좋고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가난한 집 아이는 동네의 열악한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게 됐다. 반면에 부유층이 모여 사는 강남을 중심으로 8학군이 생겨난 것이다.
한 마디로 교육 평준화가 역설적으로 주거지역과 부모의 사회계급적 조건이 교육기회를 규정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명문 대학의 신입생들 중 중상류층 출신의 비중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교육이 더 이상 사회적 신분 이동의 통로가 아니라 계급적 대물림의 기제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부모가 부유하다는 이유로 8학군의 명문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부유층 자녀들이 부당하게 갖게 되는 유리함을 상쇄해줌으로써 이 같은 교육계급화의 추세에 그나마 제동을 걸어줄 수 있는 일종의 균형추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신이다.
자기들 간에 상대평가를 하는 내신의 경우 그 성격상 8학군 학생들의 경우열악한 교육환경에 있는 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에 비해 오히려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신이 갖고 있는 이 같은 균형추의 역할은 일부 사립대학들이 고교등급제를 실시함으로써 아무런 효과가 없게 되어 버렸다. 아니 내신조차도 균형추가 아니라 교육계급화의 기제로 변질해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교육과 입시제도는 단순한 교육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와 체제의 정당성과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이다. 단순히 가난한 부모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 기회가 봉쇄되고 그 결과 계급적 대물림이 고착화될 때 그 체제의 정당성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교육의 계급화를 해결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논의를 초정권적 차원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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