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10월12일 이탈리아 시인 에우제니오 몬탈레가 제노바에서 태어났다. 1981년 밀라노에서 졸(卒). 몬탈레는 주제페 웅가레티(1888~1970), 살바토레 콰지모도(1901~1968) 등과 함께 20세기 이탈리아 시단을 대표할 만한시인이다. 첫 시집 ‘오징어의 뼈’(1925)에서 전통적 시형을 깨뜨리는 야릇한 리듬으로 현대세계의 황폐한 내적 풍경을 그린 이래 몬탈레는 난해시또는 신비주의(에르메티즈모)의 챔피언으로 꼽혔지만, 실상 그의 시세계는어떤 라벨을 붙여 가두기에는 너무 풍요로웠다.몬탈레가 신비주의자든 아니든, 그의 시는 음악에서 출발했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징집되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지만, 음악은 몬탈레의 일생을 따라다녔다. 음악은 그의 시 속에서 다양한 변주와 밀도로 펄떡거리기도 했고, 시 바깥에서 시인의 생업을 감당하기도 했다. 장년기 이후 몬탈레는 밀라노의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에서 밥벌이를 했는데, 그가 기고한 기사들은 주로 음악평론이었다. 문학에 대한 글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몬탈레는 1922년부터 문학지 ‘프리모 템포’의 창간 멤버로 일했고, 일생동안 여러 매체에 시 비평을 썼다. 그는 또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셰익스피어, 코르네유, 멜빌, 엘리엇, 오닐 같은 영어권과 프랑스어권 작가들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옮겼다. 몬탈레의 사후 그의 작품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됐지만, 생전에는 자신의 시를 스스로 프랑스어나 영어로 번역했을 만큼 외국어에 능했다.
몬탈레의 시에 정치적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그는 조국의 파쇼 정권에 다부지게 반대했다. 1920년대 말부터 10년 가까이 재직한 피렌체의 가비네토 비외쇠 도서관 관장 자리에서 쫓겨난 것도 정치적 입장 때문이었다. 몬탈레는 197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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