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깨지지 않고 지켜지는 불문율 하나. 불륜을 저지른 모든 남자들은 ‘나쁜 놈’이다. 혹은, 그렇게 불륜을 유도한 여성은 ‘악녀’다.그런데 KBS2 ‘두번째 프러포즈’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민석(김영호)은 자신의 불륜을 정당화하며 뻔뻔하게 큰 소리 치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아내 미영(오연수)에게 자신이 진짜 ‘사랑’에 빠졌노라며 용서를 구하고, 위자료를 주기 위해 아끼는 시계까지 판다.
민석의 재혼 상대인 연정(허영란)도 악녀와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민석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돕고, 민석의 아이들을 기를 생각도 한다. 적어도 민석이라는 사람 자체로만 보면 그는 돌 맞을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행복이라고 생각한 방향으로 나아갔을 뿐이고, 그에 대한 책임도 졌다. 그들은 최소한 ‘무책임’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두번째 프러포즈’는 민석의 사랑은 ‘자유’지만, 그 사랑으로인해 가정이 감당해야 할 문제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건 민석의 잘못이 아니라, 이혼이라는 것 자체가 지금의 한국여성들에게 여전히 불리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남편으로서 사회활동을 해온 민석은 당장 돈이 없어도 다져놓은 사업체와 인맥으로 곧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결혼생활 내내 집안 일에만 매달려 아파트 밖 세상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미영은 위자료에만 의지해 미래를 아예 새롭게 계획해야 한다.그녀는 조급한 마음에 위자료를 한 곳에 투자했다가 실패하고 거리에 내몰릴 처지가 된다.
게다가 그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민석의 직장동료와 몇 마디 했다는 이유로 그의 아내로부터 오해를 받고, 폭행을 당해 유산할 정도로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까지 견뎌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민석은 아이들의 친권을 가져 갔지만 연정과의 결혼생활 때문에 아직 아이들을 기를 수 없다 하고, 미영은 투자에 실패하면서 아이를 시어머니에 뺏겨 자신이 키울 수도 없게 된다.
합의만 한다면 부부사이의 이혼은 자유다. 하지만 아직 우리사회는 이혼한 여성이 자유롭게 살도록 놔두지 않는다.
미영이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전 남편의 도움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줄 사회적인 기반이다. 그것은 단지 경제적인 것 뿐만 아니라, 사회의 시선 그리고 아이들로 하여금 꼭 모든 가정이 친아빠 친엄마와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인식의 문제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두번째 프러포즈’의 문제 제기는 박은령 작가의 전작 MBC ‘앞집여자’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앞집여자’가 불륜을 ‘현실’로 인정하되 코믹하게 묘사했다면, ‘두번째 프러포즈’는 불륜을 넘어 이혼 이후의 ‘현실’을 진지하게 파고들면서 이미 현실로 다가온 이혼 이후의 삶,새로운 가족 구성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과연 우리는 남녀 모두가 각자의 마음에 따라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두번째’ 프러포즈를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긴, 아직 호주제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곳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 역시 앞서 간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중문화평론가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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