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저녁 부산의 수영만 야외상영장.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왕자웨이감독의 ‘2046’이 상영되었다. 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이 영화는 꽤나 퇴영적이고 쓸쓸하고 자극적이었다.판타지적 요소까지 정교하게 첨가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또한 폐쇄회로 속을 헤매듯이 지루한 느낌도 주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해변의 썰렁한 한기가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영화가 끝났을 때 따뜻한 동남아지역에서 특파된 기자들의 입술은 파라 보였다. 영화제 다운 체험이었다.
▦ 하필 왜 ‘2046’의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였는지. 60년대에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가 많았다. 시골 장터에 노천 가설극장이 세워지면, 확성기가 달린 영화사 차가 마을마다 시끄럽게 누비고 다녔다.
“오늘 저녁 반드시 손수건을 가지고 극장에 왕림해 주실 것”을 당부하곤했다. 당시 누선을 자극하는 영화가 ‘맨발의 청춘’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이었다. 시골 장터의 가설극장에서 영화제 야외 상영장까지 우리 영화는 40년 동안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 9회 부산영화제에는 63개국에서 262편의 영화가 초청됐다. 매년 기록을 갱신해가며 이제는 ‘아시아 제1의 영화제’를 넘어, 당당히 세계 영화계의 인정과 평가를 기대하기에 이르렀다. 급성장한 이유는 영화제가 순수성을 지켜왔기 때문일 것이다.
한 예를 본다. 이날 개막식에는 많은 원로 영화인과 신예감독, 스타배우,주최측인 부산시 관계자, 관련 문화인, 언론인 등이 참석했다. 특히 청소년 영화팬은 젊은 감독과 스타 배우들이 입장할 때, 뜨겁게 환호했고 박수로 환영했다.
▦ 정치인도 많이 왔다. 정치인이 입장할 때, 소개는 우렁찼지만 반응은 별로 없었다. 개막식에서 영화인만 인사를 했을 뿐, 정치인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마이크 잡기를 좋아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안 된 일이었다.
지금까지 유력 정치인들로부터 ‘여배우에게 꽃다발을 증정케 하라’는 등별별 요구와 압력이 다 있었다고 한다. 역대 영화제는 이를 철저히 거부했다. 칸, 베를린 등 유명 국제영화제에서도 대통령은 왔다가 보고 즐기고 갈 뿐이다. 철저한 정치성 배제의 전통이 무너진다면, 이 영화제도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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