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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키로프발레단 '백조의 호수'로 2004/2005시즌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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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키로프발레단 '백조의 호수'로 2004/2005시즌 시작

입력
2004.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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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문화수도’를 자부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구 키로프극장)이 가장 러시아다운 오페라와 발레로 2004/2005 시즌을 시작했다. 1783년 이후 222번째인 이번 시즌의 개막 작품으로 마린스키는 7일 저녁 오페라 ‘황제에게 바친 목숨’에 이어 8일레는 발레 ‘백조의 호수’를 올렸다.‘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글린카(1804~1857)가 작곡한 ‘황제에게 바친 목숨’(1836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볼쇼이극장 초연)은 본격적인 러시아 오페라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자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애국적인 오페라이기도 하다. 1981년까지 거의 100년 간 마린스키극장은 항상 이 작품으로 새 시즌을 시작했다. 그 오랜 전통이 글린카 탄생 200주년인 올해, 중단된지 23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백조의 호수’ 또한 러시아 발레의 대명사로 통하는 걸작이자, 이 극장이 1895년 초연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마린스키의 위상과 긍지를 과시하는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다.

발레단 예술감독 마카베크 바지예프는 “키로프발레(현 마린스키발레)가 아닌 다른 발레단에서 하는 ‘백조의 호수’는 ‘백조의 호수’가 아니라고 할 만큼 우리는 최고”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내한공연(29~31일 세종문화회관)을 앞두고 있는 이 작품을 8일 마린스키 극장에서 보았다. 이날 주역은 울리아나 로파트키나와 다닐라 코르선체프. 서울공연의 첫날 나올 커플이다.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되어버린 공주 오데트의 슬픔을 표현할 때 로파트키나는 ‘타고난 백조’라는 평 그대로였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섬세하고 우아한 백조였다.

그러나 지그프리트 왕자를 유혹해 사랑의 맹세를 깨뜨리게 만드는 흑조 오딜로서 그녀의 연기는 흑조 특유의 관능적인 색채가 옅은 편이어서 아쉬웠다.

왕자 역의 코르선체프는 빼어난 기량과 기품을 지닌 훌륭한 파트너였다. 그러나 같은 ‘백조의 호수’라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 판은 왕자의 춤이 많은 반면, 키로프 판은 철저히 오데트 중심이고 왕자는 보조역에 그치기때문에 그가 기량을 과시할 기회는 별로 없다.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섬세한 키로프 발레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공연이었다. 특히 군무의 빼어남은 이 발레단의 오랜 전통과 명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바지예프 감독은 “오데트를 추는 주역 무용수만 6명, 솔로이스트도 40여명이나 되다 보니 공연할 때마다 캐스팅이 고민”이라고 했다. 한국의 발레단은 주역도 솔로이스트도 너무 부족해서 고민인 것을 생각하면 부러운일이다.

‘백조의 호수’는 해피엔딩과 비극 두가지 결말이 있는데, 서울에 오는 키로프발레는 해피엔딩이다. 왕자와 공주가 힘을 합쳐 사악한 마술사 로트바르트를 물리치는 사랑의 승리로 끝난다. 키로프발레의 내한공연은 9년 만이다. 서울무대의 주역은 로파트키나와 코르선체프를 비롯, 모두 4쌍이번갈아 나온다. 미하일 아그레스트가 지휘하는 마린스키극장의 오케스트라도 함께 날아온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오미환기자mhoh@hk.co.kr

■시즌개막 오페라 '황제에게 바친 목숨'

마린스키극장이 7일 이번 시즌 개막무대에 올린 오페라 ‘황제에게 바친 목숨’은 신작은 아니다. 지난 해 5월 말 드미트리 체르니야코프의 연출로 선보인 것을 다시 올렸다.

마린스키는 전에도 이 작품을 했었지만, 체르니야코프가 연출한 이번 프로덕션은 오리지널 버전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7세기 폴란드의 러시아 침공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평범한 농부 이반 수사닌이 목숨을 바쳐 황제를 구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러시아를 찬양하는 매우 애국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소비에트시절에는 원본 그대로 공연할 수 없었다. 황제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반동적인’ 메시지가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닌이 폴란드 침공 당시저항군 지도자를 위해 죽는 것으로 대본이 수정되었다.

체르니야코프의 연출은 현대적인 요소가 돌출한 파격이었다.

2막 폴란드인들의 장면에 양복 정장차림의 남녀 합창단과 소총을 든 채 춤추는 발레를 배치하는가 하면, 3막에서 수사닌의 집에 난입한 폴란드군의 복장은 요즘 흔히 보는 검은 파카다. 작품의 시대배경과 동떨어진 이런 설정은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이 작품의 메시지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려는 시도로 보인다.

마린스키극장의 예술감독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한 이날 공연에서 수사닌을 맡은 세르게이 알렉사쉬킨는 러시아 베이스 가수들의 위대한 전통을 다시한번 확인시켰다. 특히 3막에서 죽음을 앞둔 수사닌이 딸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마지막 작별의 노래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품은 절절함으로 가슴 찡한 감동을 자아냈다.

객석에서 브라보가 터진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 이처럼 수사닌과 가족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시킨 것이 조국애라는 거대 메시지를 강조하던 소비에트시절의 연출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합창도 압도적인 감동으로 다가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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