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일산에 사는 정모(61)씨는 올 겨울 유행한다는 독감(인플루엔자) 무료 예방접종을 위해 최근 동사무소를 찾았으나 “백신이 부족해 오전 10시까지 700명만 선착순으로 접종한다”는 직원의 얘기를 듣고 발길을 돌려야했다. 정씨는 “날씨는 갈수록 추워지고 감기 환자도 급증하는데 보건소 접종을 받으려면 11월11일까지 기다리라고 한다”며 “병원에서는 2만5,000원이나 하고 건강보험 적용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독감 대유행을 경고한 가운데 우리나라 방역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환절기로 접어들면서 병원마다 감기환자가 속출하고 독감 증상을 호소하는 의사(疑似)환자까지 급증하고 있지만 백신 공급이 늦어지면서 보건소들이 아직도 예방접종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8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9월말 현재 독감 의사환자수는 1,000명당 2.58명으로 독감주의보 기준(1,000명당 3명 이상)에 육박하고 있다. 올해 환자관찰 방법이 달라져 지난해와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이미 독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건소들은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어린이는 아예 포기한 채 60세 이상 노인들만 대상으로 접종하고 있고 이마저도 초겨울로 접어드는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서울시내 25개 보건소의 경우 6일 현재 백신 확보량은 수요량 42만여개의 10.39%에 불과한 4만여개에 그쳤다.
당초 10월 중순 접종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던 대전 등 지방에서도 백신 확보가 안돼 11월로 미루는 곳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 보건과 관계자는 “거의 매일 항의전화에 시달린다”며 “올해 독감예방은 백신수급 때문에 다 틀렸다”고 하소연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우리나라 독감 유행은 이르면10월 중순부터 시작하는 만큼 2주 정도 걸리는 항체 형성기간을 감안할 때 10월초에는 접종해야 한다”며 “11월로 늦어지면 버스 지나간 다음 손 드는 격이 돼 매우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우선 접종 대상자가 65세 이상 노인에서 50세 이상으로 확대되고 생후 6~23개월 어린이와 닭ㆍ오리 도축 종사자까지 포함돼 모두 1,500만명에 이르지만 정부가 조달할 물량은 지난해와 비슷한 500만개에 불과하다.
독감 예방접종이 늦어진 것은 올해 질병관리본부와 조달청이 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다 일괄 수의계약을 추진하면서 제약사와의 가격 마찰로 공급 계약이 늦어졌기 때문. 제약사들은 생산되는 백신을 제값을 주는병원에 우선 공급하면서도 보건소는 11월 중순이 돼야 충분한 물량이 확보될 전망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12월까지만 예방접종을 하면 별 문제가 없다”며“백신이 들어오는 대로 접종할 경우 한꺼번에 몰려 중단될 우려가 있어 일정량이 확보된 후 접종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섭 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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