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김장 담글 시기가 다가온다. 도시에서는 벌써부터 미리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추와 무 잎을 골목에 잔뜩 내버린 것을 보게 된다.속잎만 사용하고 시들하고 너절한 겉잎은 대부분 버린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얼마 전에는 퇴근길에 쓸 만한 시퍼런 배추 잎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싱싱한 잎만 골라 집으로 가져와서 며칠을 말려 우거지국을 맛있게 끓여 먹었다.
30여 년 전 중학교 다닐 때 우거지국에 얽힌 담임 선생님 얘기가 생각난다.
중학교는 고향에서 많이 떨어진 중소도시에 있어서 형, 동생, 나 셋이서 작은 방을 얻어 자취를 했고, 주말마다 시골에서 반찬을 가져와 먹곤 하였다.
선생님은 당시 쉰 조금 넘으신 나이로 건강이 좋지 않아 아침마다 일찍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하셨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시내를 한 바퀴씩 돈 후 댁으로 가시곤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자전거에 조그만 장바구니를 하나 매달아 아침 운동을 다니시다 길가에 김장을 하고 버려진 무나 배추 잎 중 쓸 만한 것들을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시곤 했다. 이것을 말려서 우거지국을 끓여 드시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아침 선생님께서 느닷없이 우리 자취방으로 자전거를 끌고 오셨다. 얼른 방으로 모시고는 비에 젖은 얼굴을 닦으시라고 수건을 드렸다.
선생님은 상의 호주머니에서 검은 비닐 봉지 하나를 꺼내 방바닥에 놓으시고는 냄비를 가져 오라고 하셨다. 봉지에 우거지를 된장에 으깨고 멸치 몇 마리를 섞어 공처럼 둥글게 다져 오신 게 아닌가.
석유 곤로를 방 한가운데 놓고 우거지국을 끓이면서 선생님은 몇 번이나 냄비 뚜껑을 열어 보시며 냄새를 맡아 보시곤 했다. 방안은 금세 된장 냄새로 가득했고 우리는 꿀꺽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막 났다. 그리하여 그날 아침은 삼형제가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 담긴 우거지국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지금도 김장철만 되면 김장하고 내 버려둔 배추나 무 잎 더미를 지나칠 때면 그 때 선생님이 우거지를 바구니에 가득 담고 자전거를 끌고 다니시던 모습이며, 비오던 날 아침 끓여주신 우거지국의 추억을 새삼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가끔 동료들과 식당에서 우거지국을 사 먹곤 하는데 시골에서 먹던 우거지국 맛을 느낄 수 없어 아쉽다.
/eduto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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