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황지우시인 등 낭독회*내년 주빈국 계기 獨전역서 소개행사 예정
“그대의 편지를 읽기 위해 다가간 창은 지복(至福)이 세상에/ 잠깐 새어 들어오는 틈새…/ 이데올로기가 사라지니까 열광은 앳된 사랑 하나; 그 흔해 빠진/ 짜증스런 어떤 운명이 미리서 기다리고 있던 다리를/ 그대가 절뚝거리면서 걸어올 게 뭔가.”
9일 오후 1시30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장 내 국제센터. 독일 바깥의 작가들을 초청해 해외 문학을 소개하는 문학 낭독회장에 황지우 시인의 시 ‘몹쓸 동경(憧憬)’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독일 번역가 스테판 비툰이 독일어로 번역된 시를 읽어가는 동안 150여 청중은 먼 이방의 나라에서 들려오는 낮선 문학에 귀 기울였다.
우베 슈멜트 독일문화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낭독회의 주제는 ‘한국이 오고 있다(Korea is coming)’. 내년 제57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를 앞두고 한국문학을 미리 소개하자는 취지. 황지우 시인의 시에 이어 소설가 신경숙씨의 작품 한 대목과 서울대 독문과 교수인 시인 고원씨의 구체시(문자의 꼴과 소리를 통해 소통을 추구하는 시) 3편이 소개됐다. 작품 낭독이 끝난 뒤, 창작 배경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50인 내 세대는 어릴 때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 언제나 군복 입은 아버지의 지시와 명령을 받고 살았다.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동력이었다. 1950년대 들어 살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때 알았다.
분명히 싸워야 할 적이 있을 때, 인생은 살만하다는 것을.” 황지우 시인의 작품 소개에 이어, 신경숙씨는 “1970, 80년대 산업화를 힘겹게 겪어낸 10대 중후반 한 소녀의 내면을 그렸다”며 독일 독자들이 펜드라곤출판사에서 번역된 자신의 작품 속에서 “사랑, 희망 등의 의미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원 시인은 “자신의 시 작업이 1970년을 전후 독일의 실험시와 무관하지 않다”며 “아직 외톨이지만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슈멜트 원장은 황지우 신경숙 작품에 대해 “한국의 한 시대를 보여준 시와 소설”이라고 부연해서 소개했다. 청중들은 1시간 동안 한국문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시했지만 “한국이 독일을 아는 만큼 독일은 한국에 대해 모른다”는 슈멜트 원장의 지적처럼 거의 질문이 없어 안타까웠다. 또 행사를 전후해 프랑크푸르트 일대에서 열린 신경숙씨와 황지우 시인의 다른 작품 낭독회는 준비 부족으로 엉성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조직위는 이날 낭독회와 비슷한 방식으로 내년 3월부터 도서전이 열리는 10월까지 독일 전역에서 작가 62명이 참가하는 한국문학 소개행사를 잇따라 열어 독일 내에 한국문학 붐을 조성할 계획이다. 참가 작가는 소설가 42명, 시인 14명이다.
도서전 주빈국 행사에 맞춰 한국문학 번역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진형준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독일의 대표적인 문학출판사인 주어캄프와는 박완서 이문열 이창동씨 등의 소설을 묶은 한국소설선집을 내기로 했고, 역시 중요한 문학출판사인 데테파우도 한국소설집 출간을 계획 중”이라며 “일본, 스페인 등도 한국문학 번역 계약이 속속 성사돼 내년 주빈국 행사를 계기로 한국문학의 저변이 한층 더 넓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글ㆍ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