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귀속을 둘러싼 한중 두 나라의 갈등 와중에 과연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의 언어가 같았을지 여부가 새삼 사람들의 이야기거리가 되고 있다. 북한 학계의 공식 입장은 삼국의 언어가 같았던 것은 물론이고, 고조선·부여·진국 같은 초기 부족국가 시절부터 한반도에서는 동일한 언어가 사용됐다는 것이다.남쪽 학자들도 대개 받아들이고 있는 이 삼국 단일언어설은 현재를 과거에 투사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비판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지금 한반도에서 단일언어가 사용되고 있고 중세 이래 줄곧 그래왔다고 하더라도, 고대에도 반드시 그랬으리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고구려만 놓고 보더라도, 그 광대한 영토 안에서 과연 단일 언어가 사용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 자료는 전혀 없다.
세 나라 언어가 서로 달랐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고구려어와 고대일본어 사이의 친족관계를 상정하는 이들이 있다. 고구려어와 고대일본어를 비교할 때 거론되는 가장 유명한 예는 고구려어의 수사다. '삼국사기'에서 추출되는 고구려어 수사는 3, 5, 7, 10 넷인데, 이들의 음은 각각 密, 于次, 難隱, 德으로 표기되었다. 이들 한자가 베껴낸 고구려어의 정확한 음형이 어떤 것이든, 그것은 세, 다삿, 닐굽, 열의 형태를 보이는 중세한국어와는 판이한 반면, mi, itu, nana, towo로 재구(再構)되는 고대일본어와는 매우 유사하다. 일본어를 아는 독자들이라면, 현대 일본어에서 셋, 다섯, 일곱, 열이 미쓰, 이쓰, 나나쓰, 도라는 데 금방 생각이 미칠 것이다. 물론 이 정도의 예로 고구려어와 고대일본어 사이의 친족관계에 무게를 둘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언어의 수사에서 발견되는,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인상적인 이런 형태적 닮음이 고대 동아시아 언어들과 종족집단들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사실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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