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불륜으로 맞바람을 피웠던 여자와 다른 남자와 동거한 사실을 숨기고 결혼한 여자, 당대의 도덕과 질서를 깨트린 이들을 우리 사회는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심상치 않은 이 질문을 KBS 주말드라마 ‘애정의 조건’(극본 문영남 연출 김종창)은 줄곧 던져왔다. 가정주부의 불륜과 혼전동거라는 ‘독한’ 소재를 금파(채시라) 은파(한가인) 두 자매의 결혼생활을 통해 사실감 있게 그려 내며 막판 5주째 시청률 1위 행진까지 하고 있다. 장수(송일국)가 투입되면서 갈등의 축은 금파_정한에서 은파_장수로 옮겨갔고, 은파의 과거가 폭로되면서 그에 따른 아픔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일 그 막을 내린다.
‘애정의 조건’은 시청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주말드라마로서는 부적절한,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이야기를 선보였다는 혐의, 지극히 남성적이고 가부장적인 시각에서 여성의 문제를 그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제도에 잠복해 있는, 누구나 한번쯤은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와 갈등을 예리하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현대판 ‘여자의 일생’이라 할만한 하다. 이에 대해 ‘노란손수건’을 통해 미혼모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도 했던 김종창 PD는 “ ‘애정의 조건’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 사회 가족과 결혼제도가 지닌 모순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애정의 조건’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답은 ‘슬픈 해피 엔딩’이다. 은파는 장수를 위해 유산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결국 두 사람은 눈물 속에서 이혼을 한다. 장수는 유학길에 오르고, 은파는 그 후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른다. 그리고 두 사람은 3년의 세월이 흐른 뒤, 방송국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재결합 했던 금파도 다시 정한과 별거에 들어간다.
결론만 떼어 놓고 보면 금파 은파 자매는 결국 용서받지 못한 셈이 된다. 하지만 처음 은파의 혼전동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장수가 은파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계속한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결말’일 수도 있다. 가족관계나 사회적 관계로 두 사람이 묶이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인 애정은 모든 ‘조건’에서 자유로워 질 때 가능해 진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출연자가 바라본 '애정의 조건'
▲ 윤미라(장수 어머니)=첨엔 독한 시어머니라고 사람들이 욕할까 걱정했는데 주변 분들이 다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세요. 전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만약 귀하게 키운 외아들이 있는데 속아서 장가를 들었다면, 그 분한 감정이 장수 엄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을 거에요. 방법만 달랐을 뿐이지 둘을 갈라 놓으려고 했겠죠. 가인이가 우는 장면이나 한진희씨가 무릎 꿇고 비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찡해서 용서해 주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죠. 하지만 결혼하기 전에 당사자는 물론 사돈 집안까지 은파의 과거를 모두 철저하게 숨겼는데 시어머니로서는 기막힌 일 아닌가요? 아들 가진 엄마로서는 용서해줄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결국 ‘애정의 조건’은 우리 사회의 성적 문란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는 드라마라고 봐요.
▲ 한가인(은파)=은파는 장수씨를 위해서 유산했다고 속이고 이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워요. 한 순간의 실수에 대한 대가치고는 정말 가혹한 거에요.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와 헤어져야 하고,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자식에게 대물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그동안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한국의 현실이 그렇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과거 있는 여자라고 무조건 매도하는 건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착하고 시부모님에게도 잘하는 은파를 당연히 용서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동안 연기하면서 한 회도 울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3년 만에 유학길에서 돌아온 장수씨를 만나는 장면에서도 또 울었어요. 하지만 은파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했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졌으니까. 그때 만큼은 장수씨에게 떳떳할 수 있었을 거에요.
▲ 한진희 (은파 아버지)=저도 딸만 둘 키우는데 이 녀석들은 속을 전혀 안 썩히니 천만다행이지만 만약 은파 같은 딸이 있다면 가슴이 찢어지겠죠. 은파가 어린 나이에 동거를 하게 된 건 사실, 아버지가 밖에서 나온 자식이란 걸 알고 방황했기 때문이니까요. 그렇다고 사돈댁에 달려가 용서를 빌지는 못할 것 같아요. 드라마니까 그런 내용이 나오지 현실적으로는 고개를 들지 못할 일이죠. 지난주 은파가 장수에게 “난 지금 벌 받는 거에요. 당신 속인 죄, 당신 부모님 내 부모님 가슴에 못박은 죄”라고 말한 대목이 있는데 아주 의미심장하데요.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이야기죠. 그렇지만 그 벌이 은파 인생에서 계속되서는 결코 안 돼요. 시간이 흐르면 용서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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