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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담론은 그만, 각론으로

입력
2004.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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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보수단체의 시청 앞 집회가 ‘보안법 싸움’의 극단을 표출하더니 국정감사 중인 국회에서 역사교과서 등을 놓고 색깔론 싸움으로 이어진다.문제를 문제로 다루는 토론의 장(場)에서 끄집어 내 덧칠과 염색으로 싸움판에 끌어들이는 고질적 습관을 벗지 못한다. 싸움으로 치면 지난 봄 대통령 탄핵 싸움이 격전 중의 격전이었지만 허구한 날 싸움판으로 내달리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장래는 무엇이 될까 걱정이 엄습한다.

싸움판은 감성의 세계이니 그 판에선 잘 잘못이 뒤섞이기 쉽다. 얼마 전 보수원로들의 시국선언이 취지와 충정에 대한 이해를 얻으면서도 폭 넓은 호소력을 발휘하기엔 결함을 남겼던 것이 한 예다.

그렇다고 어느 쪽의 잘 잘못이 없는가. 그건 아니다. 잘못한 쪽이 있으니싸움이 벌어진 것이고, 제대로 해야 할 것을 거칠게 다루니 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 소재가 돼 있는 국가보안법 개폐, 수도이전, 과거사 문제 등이 모두 그렇게 시작되고 벌어지는 싸움이다.

가령 보안법에 대한 대통령의 과격한 한 마디가 10만 명의 가두시위를 부르는 위험한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보안법 개폐가 시위로 해결될 일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위대의 구호 속에는 그간 대통령과 여권의 중첩된 언행과 모호한 정부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 보안법 논의는 거쳐야 할 일이지만 대통령이 논의의 시발을 그런 식으로 당겨서는 안될 일이었다. 나머지 두 현안도 그런 모양을 띠고 있다.

그러나 모든 여론조사는 국정현안의 이런 흐름에 반대하고 있다. 70%, 80%의 여론이 제발 경제를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여론은 이 싸움들을 해선 안 될 싸움으로 여기고 있다.

과거사를 규명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그 것을 따지자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조사결과들은 말하는 것이다. 리더십의 요체는 때로 의제선정에 달려 있다. 여권이 총력을 기울여 추진하는 현안들에 국민여론이 동조, 공감하지 않고, 나아가 적극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그 의제를 바꾸라는 요구이다.

잘못된 의제설정으로 벌어지는 싸움의 피해를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이자, 대통령과 여권이 국정의제 설정에 실패했다는 판정인 것이다.

책임있는 집권당이라면 국민의 이 바람을 어떻게 수용하고 부응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가 지금이다. 감성의 정치에 능한 대통령과 여당은 그 감성을 민생이 도탄상태라고 판단하는 데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대오각성과 전환이 없이는 계속 추락하는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앞으로도 회복할 기회를 찾기 어려울지 모른다. 먹고 사는 문제가 게걸음을 계속하는데 어디 가서 지지를 되찾겠는가.

담론을 그만해야 한다. 대신 그 자리에 각론이 쏟아져야 한다. 정부 출범1년 8개월 사이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정책각론이 나온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로드 맵이니, 시스템이니 하는 말들은 무수히 들어왔지만 아직도 국정이 담론 수준에서 맴돌고 있어서야 정부가 제 기능을 올바로 한다고 할 수 없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가 20개를 넘어 ‘번창’하는 것이 바로 이 정부에 흐르는 담론의 전성을 의미하는 징표다. 해야 할 일을 찾는 데는 위원회 방식이 유용할지 모르겠지만 실행과 실용이 따르지 않으니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지금 보수와 진보라는 편갈림의 격동도 담론구도로 나라를 끌어오면서 판이 커진 결과이다.

3김 시대 지역분열은 3김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장해준 물리적 토대였지만 담론주의가 빚는 분열과 충돌, 낭비와 소모는 결국 파국과 공멸을 촉진할 뿐이다. 싸움판에서 이성과 합리를 구출해 각론을 번성시켜야 한다.

조재용 논설위원

*금요일 아침 ‘메아리’ 컬럼은 오늘부터 조재용 이상호 이준희 황영식 논설위원이 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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