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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31> 투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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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31> 투투 대주교

입력
2004.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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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0월7일 인권운동가로 유명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공회 대주교 데스몬드 음필로 투투가 클레르크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흑인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사로 일하던 투투는 런던으로 유학해 킹스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96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으로서는 처음 성공회 신부로 서품됐다. 1976년 요하네스버그 앵글리컨처치의 수석사제가 되었고, 1986년에는 케이프 관구의 대주교가 되었다. 영국교회(앵글리컨처치)라고도 불리는 성공회는 16세기에 영국 왕 헨리8세가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면서 만들어낸 종파다.투투 주교가 인권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76년 요하네스버그 교외의 흑인 거주지역 소웨토에서 일어난 폭동이 참혹하게 진압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백인 정권의 흑백 분리주의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일관된 비폭력 투쟁으로 저항하며 흑인의식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고, 이런 평화적 차별철폐운동의 공로가 인정돼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투투 주교는 만델라 집권 이후인 1995년 말 출범한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위원장이 돼 조국의 뒤틀린 과거를 규명하고 평화적으로 바로잡는 키잡이 노릇을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 받는 1976년 소웨토 폭동은 백인 정부가 이 지역의 흑인 초등학교에 아프리칸스어 교육을 강요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영어를 포함한 남아프리카공화국 11개 공용어 가운데 하나인 아프리칸스어는 17세기 중엽 남아프리카 지역에 네덜란드인이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들어온 네덜란드어가 본국의 네덜란드어와 독립적으로 진화한 형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주민의 10%를 차지하는 백인의 주류는 네덜란드계(보어인)와 영국계고, 그 밖에 프랑스계와 독일계 주민들이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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