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에는 한 사람의 일생도 담겨있고, 하늘의 궁궐도 축약돼 있어요.”1990년대 초 국내 주요 사찰의 단청을 도맡았던 단청분야 문화재 수리기술자 김윤오(51ㆍ사진)씨가 현장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가 12년 만에 단청문양 8만4,000여장을 갖고 돌아왔다. 강원 원주 폐사지 옆 폐교 한 켠에 홀로 파묻혀 새 문양을 고안하기 위해 씨름해온 그가 대표 작품 100여점을 모아 13~19일 서울 인사동에서 ‘창작단청문양전’을 연다.
“고통에서 벗어나 참 나를 찾는 과정으로 생각했다”는 그의 10여년 세월의 흔적은 몸에 고스란히 배여 있다. 밥 먹는 시간도, 잠 자는 시간도 아까워 하며 문양과 사투를 벌이다 보니, 몸무게는 50kg을 밑돌고 영양실조로 앞니 7개가 빠져 버렸다.
그렇게 몸을 버리고 얻어낸 것이 바로 금(錦)문양 5만장과 지장보살, 학,봉황 4,000여장 등 모두 8만4,000여장의 문양이다. 하나하나가 화려한 오방색과 기하학의 세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그는 “단청은 단순한듯 하지만 문양과 선 하나 하나에 나름대로의 의미와 기원이 담겨 있다”며 “한 사람의 인생이 태어나 죽기까지의 과정도 들어있고, 부부싸움하는 옆집의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단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8세 때인 1971년. 당시 불국사에서 작업을 하던 최고 단청기술자인 한석성씨의 문하에 들어갔고, 79년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을 땄다.
그는 월정사, 송광사, 불국사, 마곡사 등 주요 사찰 뿐 아니라 천마총, 무녕왕릉, 김유신사당 등의 문화재 보수작업에도 참여했다. 단청기술자로 편안히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창작에 대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불교 1,700년 동안 문양이 겨우 300여 가지로 한정돼 있는 게 안타까웠어요. 전통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단청의 새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은 현재 불화를 그리는 만봉, 석정 스님과 홍점식씨 3명 뿐이다. “이번에 무형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다”는 김씨는 “순수한 단청문양 보존과 개발에도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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