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던 KBS의 ‘한국사회를 말한다--선교 120년, 한국교회는 위기인가’가 지난 10월 2일 예정대로 방영되었다.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은 이 프로그램이 한국 기독교를 근거 없이 비방한다는 이유로 방영 전 사흘 동안 KBS 앞에서 시위를 벌인 바 있다.그러나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각종 게시판에 나타난 시청자 의견은 프로그램에 대해 호의적인 내용이 많았고, 한기총 측은 추가집회를 유보하기로 결정하였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여론조사 결과나 구체적 사례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했을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공과에 대해서도 비교적 균형 있는 시각을 보였다.
그렇다면 당연한 의문 두 가지가 떠오른다. 왜 이 기독교단체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규모 시위를 강행하였는가? TV는 종교(단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인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시위’는 대개 ‘민주화’와 엮여서 해석되어왔다. 억압된 정치환경 속에서 민주화를 입 밖에 내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구속이나 고문의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에 나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정치환경이 바뀌었다. 의사표현의 방법과 형식과 내용도 다양해졌다.
TV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기총이 신자들을 동원한 ‘시위’라는 방법을 택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참가자들은 프로그램을 보지도 않았고, 그 내용이 어떠할 것이라는 예단만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시위도 엄연한 의사표현 방법 중 하나지만, 프로그램 방영 이전에 예단만가지고 방송사 앞 시위를 가진 것은 시위만능주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더구나 같은 단체는 이틀 후 서울시청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주도하였다. ‘민주화’와 대척점에 서있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말라고 ‘시위’를 하는 모습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대기업으로 대변되는 경제권력도 있고, 언론권력, 문화권력도 있다. 종교권력 역시 비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동안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은 다양한 종교단체를 비판의 대상으로 다루어왔지만 이는비리 고발의 성격이지 권력비판은 아니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에 부분적인 책임이 있는 종교권력을 해석하고 비판하고 전망한 것이다. 기독교가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화에큰 기여를 했다고 전제하면서 일부 영향력 있는 대형 교회의 목사직 세습과 불투명한 재정운영을 비판한 내용을 무책임한 비방으로 볼 수 없다.
권력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다. 혹시 일부 교계가 이 프로그램을 종교적 권위와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광장에 모여 소리 높여 비판을 하면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은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자세라면, 이 또한 아이러니이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