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의 제프 블래터 회장이 최근 “유럽의 부자 구단들이 축구를 망치고 있다”고 일갈(一喝) 했다. 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쓴 기고문에서 “부자 구단들이 선수들을 사고팔면서 이적료를 챙기는데 혈안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도 “풀뿌리 축구의 발전이라는 근본을 무시하고 국가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 기고문에 ‘탐욕으로부터 축구를 구해야 한다’는 제목을 달았다.
다음 날 펠레가 브라질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축구황제는 ‘축구의 파업’을 촉구했다. “명문 플라멩코의 선수들조차 3개월 이상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의 기자회견 제목은 ‘가난으로부터 축구를 구해야 한다’쯤이 될 것이다.
다음 날 스즈키 이치로가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세웠다. 84년만에 다시 쓴 이 역사는 ‘일본군의 진주만 폭격’과 ‘패전 일본의 워싱턴D.C. 사쿠라(벚꽃) 헌정’에 버금가는 ‘일본의 아메리카 점령’으로까지 표현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일본 풀뿌리 야구문화의 승리”라고 찬양했다. 일본 언론은 ‘기본에 충실한 이치로의 일본혼(魂)이 미국의 부(富)를 우습게 만들었다’며 즐거워 했다.
일요일 하루를 쉬고 그 다음날 한국관광공사가 2004년 PGA투어 코리아골프챔피언십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총상금 350만달러(약 42억원)에 총경비 115억원. 내달 25일부터 제주 중문CC에서 열리는 이번 골프대회에는 세계적 스타 36명이 출전한다고 홍보했다.
올해 국내의 남자 프로대회 6개 총상금이 28억5000만원인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대형 ‘코리아오픈’이다. 그런데 한국 선수들은 단 1명도 출전할 수 없다. 초청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경주와 나상욱은 출전한다. 그들은 ‘한국 선수’가 아니라 ‘PGA투어 상위 랭커’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란드 등 미국 이외 지역에서 열리는 PGA투어에는 자국 선수들을 많이 출전시켜 국민에게 관심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그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미LPGA투어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서 국내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안시현이 깜짝 우승하며 지금의 ‘신데렐라 시대’를 열었다.
한국관광공사의 코리안투어챔피언십은 PGA투어가 주관한다지만 PGA투어 상금랭킹에는 포함되지 않는 일종의 이벤트 성격이다(CJ나인브릿지클래식은 미LPGA투어 상금랭킹에 포함됨).
상금랭킹 10위권 이내의 선수는 한 명도 출전하지 않는다. 한국관광공사는총경비 115억원 가운데 아직도 계상하지 못하고 있는 40여억원을 일본 기업체에서 협찬형식으로 조달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문화관광부에 관광진흥기금을 신청할 궁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비슷한 시기, 지난 주말 서울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선 ‘샤라포바 리사이틀’이 열렸다. 세계랭킹 100위권 선수들와 준결승전과 결승전을 치루는 윔블던의 요정은 ‘테니스 선수’보다 ‘빨간 바지의 패션모델’로 비쳐진듯 했다. 우승컵을 치켜든 마리아 샤라포바의 순진한 미소에 오히려 관중인 우리가 썰렁함과 겸연쩍음을 느꼈다.
‘탐욕으로부터 스포츠를 구해야 한다.’ ‘이벤트 홍보나 선전 수단에서 체육을 가려내야 한다.’ 최소한 문화ㆍ관광을 주관한다는 정동채 장관이나 대한체육을 책임진다는 이연택 회장의 일갈이 필요하다.
정병진 부국장 겸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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