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서울 명동(明洞)에야 음악다방 돌체도, 대폿집 은성도 없고, 그렇고 그런 유행소비의 거리가 된 지도 오래지만, 우리 예술사에는 빛나던 ‘명동시대’가 있었다. 또 거기에는 술집의 풍경처럼 늘 단정히 앉아 독작(獨酌)의 풍모를 지키던, 명동백작이라고도 불렸고 명동시장(市長)이라고도 불리던 소설가 이봉구(李鳳九ㆍ1916~1983ㆍ사진)가 있었다.이봉구의 명동실록 같은 수필 ‘명동 그리운 얼굴들’이 12년 만에 EBS TV의 드라마 ‘명동백작’방영에 맞춰 같은 제목(일빛 발행)으로 재출간됐다. 책에는 김수영 이중섭 전혜린 등 기라성 같은 당대 예술인들, 그들의 낭만과 열정의 삶의 단면들이 싱싱하게 담겨 있다.
해방 전 어느 날, 먹고 살자고 고향 근동의 한 군청에 임시직으로 취직한 가난한 시인 서정주가 엽서 한장을 보낸다. “오하요 고자이마스. 아침이면 이런 인사를 열 자리 이상 해야 한다. 하루에 일 원… 너무 아득한 길인 것만 같아서 어디 노변에 자꾸 주저앉고만 싶다”
그의 엽서를 읽고 함께 가슴 아파하던 명동 친구 가운데 시인 이시우는 징용장을 받는다. 직장은 명동다방과 술집이고, 직업이 시인이니… 일본 헌병대에 이름만 걸어두면 징용을 면한다는 누구의 제안에 그는 “내 친구가200명은 된다… 헌병대 앞잡이가 되느니 가서 죽어도 나는 가겠다”며 울먹였고, 그들은 함께 울었다.
손소희 전숙희 유부용이 동업으로 연 다방 ‘마돈나’와 그 집을 단골로 찾던 시인 이용악의 애수어린 얼굴, 장만영이 개업한 다방 ‘비엔나’의 단골 문인들과 노란 스웨터에 양복에 ‘캡’까지 쓰고 앉아있기를 즐겼던시인 김수영의 이야기도 있다.
책에는 명동 골목골목 스몄을 식민지 지식인의 절망과 해방 뒤의 턱없던 포만감, 전후의 좌절과 비애에도 빛을 잃지 않고 우리문화의 비옥한 자양분이 된 그 예술적 자유혼들이 때로는 절절히, 때로는 담담히 소개돼 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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