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다도면 판촌리의 고마마을숲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나주시에서 13번 국도와 23번 국도를 지나 지방도를 몇 개 더 갈아타야 한다. 그래서 도로 번호를 기억하고 찾아가기 보다는 먼저 나주호를 찾은 다음 고마마을을 묻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나주호 북쪽에 있는 판촌리에 가면 마을 안에서 끝날 것 같은 도로가 보인다. 이 때 마을 주민들에게 고마마을을 물으면, 그 도로를 따라 곧장 넘어가라고 한다. 가도 가도 마을숲이 나올 것 같지 않지만, 주민들의 말이니 믿고 계속 가다 보면 언덕 너머 다른 세상으로 가는 듯한 고개가 나오는데, 이 곳을 넘으면 바로 고마마을이다. 같은 판촌리 안에 있지만 고마마을은 이렇게 별세계에 있다.
고마마을의 전통숲도 별나다. 보통 마을숲은 지형적인 결함을 보완하고자 산자락 사이를 잇거나 흐름이 완결되지 않은 산자락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마을숲은 마을 뒤쪽에서 시작하여 270도 정도 마을을 크게 돌아다시 산자락으로 연결된다.
뒤쪽에서 마을을 향해 내려오는 물살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숲을 조성하였으나, 그 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버리는 것은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물길을 다시 마을 앞으로 돌리고, 이렇게 물이 돌면서 많은 곡식을 키우고 가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물의 양이 적지 않기에 석축을 크게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었다. 이 마을숲 속에 다리가 4개나 있는 것을 보면 물길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주민들은 이번 여름에도 물이 넘쳐서 제방을 튼튼히 하지 않았다면 논이 유실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물이란 이렇듯 많아도 문제고 모자라도 문제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버리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 물이다. 물만이 아니라 바람도 그랬다. 그래서 풍수, 즉 장풍득수(藏風得水)가 중요했던 것이다.
마을숲을 조사하기 위해서 옛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인간의 힘이 미약해서 자연에 맞설 수는 없었으나, 농사에 자연의 힘이 필요했던 조상들은 항상 전전긍긍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위험한 널뛰기에서 마을숲을 기반으로 균형을 잡아갔던 것이다.
고마마을숲은 대부분 느티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나, 간간이 푸조나무, 말채나무 등이 눈에 띄어 색다른 감을 주었고, 하늘높이 솟아오르는 나무줄기에 마삭줄, 담쟁이덩굴이 감고 올라가 생명력을 더해 주었다.
하층에는 느티나무도 자연적으로 갱신되었는데, 마을 안에도 어린 느티나무들이 여러 군데 자라는 것으로 보아서 이 마을숲의 앞날은 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숲은 목재 생산을 위해 조림한 나무를 돌보듯이 가꿀 것이 아니라 나무의 성장은 더디더라도 마을숲의 목적에 맞게 지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을숲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1시간 정도 머무는 중에도 할아버지두 분이 환담을 나누다 돌아가셨고, 나중에는 할머니 두 분이 만나 정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농사일에 바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아낙도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고가는 모습은 아직 마을숲이 마을 풍속을 지키는 데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보여줬다. 또 숲길에 깔아둔 발바닥 지압 시설은 앞으로 마을숲이 담당해야할 기능이 더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만 멀리 보이는 나주댐을 바라보며, 마을숲이 하는 기능을 기계에 맡기고 무디게 살아가는 지금의 삶을 기뻐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삶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오랜 세월을 거쳐 이룩한 마을숲도 하루 아침에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인간이 가졌다는 것은 이제는 자연재해에 덧붙여 인재(人災)를 더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준환ㆍ국립산림과학원 박사kecology@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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