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기치로 출범한 17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시작된 4일 국방부 국감장. "시뮬레이션 결과, 한국군 단독전력으로는 16일만에 서울이 붕괴되는 것으로 나왔다"는 한나라당 박진 의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기자는 우리나라의 한심한 군사력에 충격을 받았다. 윤광웅 국방장관이 "내일(5일) 비공개로 설명할 테니 그때 질문하라"고 피해가는 것을 보면서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그러나 몇 시간 후 국방부의 설명 한마디에 이 같은 확신은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국방부 관계자는 "박 의원의 주장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실시한 100여가지 시뮬레이션 가운데 '워스트 오브 워스트'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미군 완전 철수, 북한 도발징후를 사전에 포착하지 못한 채(실제론 3일전 포착 가능) 완전기습 허용, 한국군 지휘부 붕괴, 증원·동원 전력의 공백 등 최악의 가정 아래 이뤄진 실험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한 장교는 "건장한 청년이 잠 든 사이 유치원생에게 기습공격을 당한 상황을 아무 설명 없이 일반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국감장에서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발언이 나왔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이 "북한군의 장사정포는 유효사거리가 짧아 서울까지 닿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 역시 "장사정포 공격은 조준 사격이 아닌 무차별 사격일 가능성이 커 유효사거리보다는 최대사거리를 감안해야 한다"는 국방부의 해명으로 일거에 평정됐다.
극단적인 선정주의는 당장 귀를 솔깃하게 하지만 그 피해는 모두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안보상업주의도 우리의 '주적' 중 하나가 아닙니까"라는 한 군 관계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정호 사회1부 기자 azu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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