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철강업체의 영업담당 임원 정상택(47)씨는 자칭 ‘장돌뱅이’다. 한달에 못 해도 일주일은 출장이고, 일 없는 주말이면 으레 동갑내기 아내와 봇짐을 챙겨 메고 전국을 떠돈다.일도 휴식도 길에서 해결하는 천상 역마살 부부다.그렇게 누빈 여행지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아내와 함께하는 국토여행(네오비전 발행)’이다. 조미료를 전혀 안 친듯한 그의 글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뭇 글꾼들의 전문 여행서적이나 유적 답사기와 다르다. 덜 전문적인 대신 소박 순수하다는 의미다.
신혼 때부터 백일 갓 지난 젖먹이 딸을 껴안고 시내버스 타고, 만원 시외버스 갈아타고, 내려서 걷는 고행의 소풍이라도 다녀와야 직성이 풀렸다는그들 부부다. 그
냥 여행이 좋아서라는 것이다. 그는 “입장료 내는 곳만 다니는 ‘초짜’과객은 면한 수준”이라지만 이쯤이면 떠남 자체가 목적인 ‘꾼’의 경지이겠다. 그러다 보니 그의 여로는 이번 주 한탄강에서 다음 주는 서울 남산과 경복궁이기도 하고, 강원 정선과 영월 동강에 갔다가 다음에는 광주, 수원이 되는 등 한 두 테마에 묶일 수 없이 분방하다.
글도 그렇다. 강원 홍천 편에서는 교사 출신 아내의 첫 부임지 물걸리 중학교를 둘러본 뒤 장래 희망란에 ‘고속버스 안내양’이라고 썼던 그 시절 오지의 아이들을 떠올리고, 서석면 풍암리 자작고개 동학군의 유적을 소개하나 싶더니 홍천 출신 소설가 전상국의 작품 ‘맥(脈)’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서울 남산의 옛 중앙정보부가 변신한 ‘문학의 집’에서는 임철우의 ‘붉은 방’이 소개되고, 남산식물원을 얘기하다가는 김재일의 ‘생태기행’을 끌어다 댄다. 경기 여주 신륵사의 번다함에서 느낀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그는 고달사터를 찾는다. “폐허의 고달사는 태어나고 번성하고 쇠퇴해간 세월이 한꺼번에 녹아 있는 아늑한 사색의 공간이었다….
텅빈 폐사지에서도 우리는 옛 이야기로 가슴 충만해진다”더니 “이 땅에 먼저 살던 것들은 모두 죽어서 남아 있는 어린 것들을 제대로 살아있게”하는 법이라는 시인 이동순의 글로 생각을 정리한다. 그는 “책 읽는 게 좋아 주섬주섬 읽었는데, 요즘은 사는 게 바빠서…”라고 했지만, 이들 부부의 독서 내공은 단정한 문체에서도, 인용된 글에서도 만만찮아 보인다.
3년여 전에 이런 저런 글들을 한 여행전문 사이트에 올린 게 인연이 돼 웹진 월 2회 고정 칼럼을 맡게 됐고, 반응이 좋았던지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해왔더라고 했다.
“저야 책을 내준다니까 황송하지만 덜컥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더군요. 출판도 사업인데 저 때문에 어려워지면….” 고심 끝에 응낙은 했지만 아직 그는 남세스럽다고 했다.
책에는 지난해 모 항공사 여행사진 콘테스트에서 디지털 부문 일등상을 탄 그의 솜씨로 찍은 여행지 사진들이 풍성하게 실려있다.
/최윤필기자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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