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기에 비극 같지만 사실은 매우 희극적이다.”“비극 속에 코믹함이 담겨 있다.”올해로 서거 100주년을 맞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4대 장막극 중 하나인 ‘갈매기’를 두고 한국과 러시아의 연출가 전훈과 그레고리 지차트콥스키는 그렇게 말했다. 그럴 리가? 그러나 1일 정동극장에서 막을 올린 ‘갈매기’는 두 연출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배우를 꿈꾼 니나(김호정)와 작가 지망생 꼬스챠(김인권), 그리고 그들을 에워싼 사람들의 꿈과 현실의 어긋남을 이야기하는‘갈매기’는 쉬운 작품은 아니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큰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10명의 등장인물 각각은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좌절하고 절망한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체호프 100주기를 기념해 그의 4대 장막극을 차례로 공연하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 연출가 전훈의‘갈매기’다. 4월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지차트콥스키 연출 작품과 비교하면, 이번정동극장 무대의 장점을 발견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지차트콥스키의 상징적이고 깊이 있는 무대연출이 돋보인‘갈매기’가 다분히 마니아용이라면, 연출가가 직접 꼼꼼하게 원작 대사를 구어체로 옮기고 척척 감기는 유머를 구사한 전훈의 무대는 대중적이다.
꿈 많고 해맑은 시골처녀에서 3류 유랑극단 배우로 전락하는 니나 역의 김호정은 관객의 호흡을 꽉 붙들었다. 3막까지의 생기발랄한 열 여덟 살 니나에서는 열 여섯이라는 나이차가 무색했고, 4막에서는 유명작가 뜨리고린(조민기)의 사랑과 여배우로서의 꿈을 잃은 니나의 황폐함을 폭발적으로 발산했다.
작가로서 성공하지만 니나의 사랑을 얻지 못해 결국 자살하는 꼬스챠 역의김인권 연기는 김호정의 호연에 상대적으로 평면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갈매기’의 등장인물들은 호수를 맴돌다 어느 순간 죽음을 맞고 박제가 되는 극중의 갈매기의 삶을 닮았다. 비극일까.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코스챠에 대한 짝사랑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마샤(윤복인)는 죽은 인생을 상징하는 검은 상복을 입고도 어쨌든 살아간다. 전훈씨는 이를“희망 없는 죽은 인생 같아도 살아갈 만하다”는 메시지라고 말한다. /문향란기자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