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간 인수·합병(M&A)이 교육계의 핫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건국 이래 망한 대학은 단 한 곳 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불망(不亡) 신화'를 이어온 대학이 최근 수년사이 학생수 감소와 경쟁력 약화 등에 따른 구조적 위기에 빠지면서 통합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달 말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대학 구조개혁 방안'은 대학 통합의 일대 전기가 될 전망이다.■국립대 "이웃끼리" 사립대 "소문 안나게" 짝짓기 열애
◆왜 통합인가
대학 통합의 이유는 단순하다. 살아 남기 위해서다. 입학생이 매년 감소하고 이로 인해 재정상태가 더욱 악화하는 구조에서 교육의 질은커녕 생존조차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대학 경영자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창원대와 통합을 추진중인 경상대의 조무제 총장은 "통합은 대학 스스로 뼈를 깎는 자기 개혁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의 구조개혁안도 같은 차원이다. 교육부는 "통합을 해야만 규모의 경제에 의한 효과적인 대학운영과 특성화를 통한 대학 경쟁력 제고가 가능하다"며 "통합 대학에 대해서는 교수 정원 우선 배정과 교육시설의 획기적 개선 등 '당근'을 주겠다"고 밝혔다.
◆지방 국립대 통합 가속도
교육부는 국립대의 경우 권역별 통합을 권장하고 있다. 이 같은 방침은 지방국립대의 통합 논의로 속속 가시화하고 있다.
가장 통합에 근접한 대학은 충남 공주대와 천안공대다. 2년 전부터 통합 준비를 해온 두 대학은 지난달 2일 교육부에 통합 제안서를 제출하는 등 서류상으로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교육부측은 "양 대학 통합은 시행 시기만 정해지지 않았을 뿐 기정 사실"이라고 전했다.
경남 경상대와 창원대의 통합 협상도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있다. 두 대학은 2006학년도 통합대학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을 목표로 전공별 통합 논의를 벌이고 있다. 유사 전공을 합치는 문제와 캠퍼스 배치, 정원 조정 등이 주 안건이다.
부산대와 밀양대의 동향도 주목된다. 밀양대는 부산대의 의대, 부산대는 밀양대의 농학계열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양 대학은 연말까지 기획처장 등 양측 각 6명으로 구성된 통합추진공동위원회를 구성, 발전적 통합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밖에 충남대와 충북대는 내년 7월까지 통합 최종안을 마련, 총장 서명을 마치기로 합의했고 강원대는 원주대와 통합 논의를 벌이고 있다.
사립대는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보다 통합이 절실하다.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 등으로는 학교를 꾸려가기 어려운 한계 상황의 학교가 더욱 많다. 그러나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더라도 교수나 노조 등 구성원들이 워낙 민감한 반응을 보여 논의 자체를 '밀실'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도권 A대와 지방 B대 등 일부 대학은 공개적인 통합 논의는 자제하는 대신 이사장이나 총장 등 최고위선에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걸림돌은 무엇인가
통합 논의가 실제 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않다. 통합 시 일부 학과는 폐지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등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대학 구성원 반발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통합 상대학교의 학생 수준이 떨어진다"는 동창회와 재학생들의 주장에 밀려 논의가 아예 중단된 곳도 있다. 지방 소도시 대학들은 "상권이 죽는다"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지방의 한 국립대 기획처장은 "윗선에서는 통합을 기정 사실화한 지 오래지만 교수들의 '저항'이 예상외로 커 추진이 답보상태"라고 털어놓았다.
대학 통합을 해당 대학에만 맡겨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교육부가 구조개혁 로드맵대로 대학간 통합을 유도해 나가는 등 직·간접적으로 간여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정영근 전문연구원은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정부의 주도 면밀한 전략 하에 일관성 있는 추진으로 당초 일정대로 통합 문제에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 외국의 대학개혁은/日, 대학평가 공개로 통폐합 압박
통폐합 등 강력한 구조개혁을 통한 대학의 경쟁력 강화는 외국에서 이미 활발히 추진되어 왔다.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들은 입학정원 축소, 산학협력 및 대학 특성화 등으로 구조개혁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일본. 일본은 2001년부터 국립대 구조조정 계획인 '도야마 플랜'을 진행하고 있다. 도야마 아쓰코 문부과학성 장관의 성을 딴 이 계획은 경쟁력을 갖춘 국립대 재건이 목표다. 2002년 101개였던 국립대를 2년 만에 89개로 통폐합했다. 2002년 야마나시대와 야마나시의대가 합병됐고, 작년 10월에는 도쿄 상선대와 도쿄 수산대가 도쿄 해양대로 합쳐졌다. 국립인 기후대와 공립인 기후약학대, 교원양성대학인 오사카 교토 효고 나라교육대는 현재 통합을 논의 중이다.
사립대 구조조정도 활발하다. 2002년 동일 법인에 속한 3개 대학이 오사카 국제대학으로 합병됐고, 지난해 4월에는 릿시칸대학이 구레대학의 사회정보학부로 흡수됐다.
일본은 특히 독특한 대학평가시스템을 통해 대학 구조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립대학의 법인화로 대학 운영에 민간 경영기법을 도입한데 이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학평가시스템'에 의한 대학 평가결과를 학생과 기업 등에 모두 공개하고 있다. 평가 결과가 낮은 대학은 통폐합될 수 있다는 사전 경고의 성격이 담겨있는 셈이다.
중국은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총 733개 대학을 288개 대학으로 통합하는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당연히 정부가 직접 나서 비인기 학과나 과목을 없애거나 지역 단과대학들을 종합대학으로 합쳤다.
핀란드는 92∼93년 경제위기 이후 강도 높은 교육개혁을 단행, 비정규 기관인 전국의 200여개 직업기술 훈련원을 합쳐 4년제 기술직업대학인 폴리테크닉 33개를 설립했다.
■ 통합8년 부경대는/신입생 정원은 줄었지만 연구환경·교수 자질 향상
"양 대학을 합치면 득보다 실이 커 통합은 곤란하다." 10년 전인 1994년 3월 당시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의 통합 논의가 처음 제기됐을 때 학교 관계자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후 사례수집 등 구체적인 검토를 거쳐 내려진 결론은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산수산대는 수산해양분야 특성화 대학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어 종합대로의 위상 정립이 곤란했고, 개방대학인 부산공대는 학사운영 자율성에 제약을 받거나 교육 및 연구환경이 열악했던 게 통합으로 가게 된 이유였다. 설문조사 결과 부산공대가 통합을 훨씬 갈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 찬성률이 부산공대는 91.2%나 됐지만 부산수산대는 59.6%에 그쳤다.
구성원들의 반발 등 약간의 진통을 겪었지만 양 대학은 통합 논의 6개월 만에 13개항의 통합 추진 기본합의서를 마련해 교육부에 제출했고 96년 7월 통합 대학인 '부경대'가 태어났다.
통합 8년이 지난 현재 부경대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3개 학과, 4개 단과대, 1개 대학원이 통폐합되고 학부 신입생 정원 110명과 편입생 520명이 주는 등 구조조정효과가 단단히 나타났다. 신입생들의 수능 평균 성적도 통합 4년만인 2000년 330점으로 97년 230점에 비해 무려 100점이나 올랐다. BK(두뇌한국)21 주관 대학 선정, 100억원짜리 공동실습관 설립 등 연구 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교수 자질이 향상됐음은 물론이다. 관광경영학과 멀티미디어공학과 위성정보과학과 등 차별화 되고 경쟁력 있는 학과 및 전공이 신설됐다.
강남주 총장은 "통합 이후 수산해양, 기계, 정보통신 등 특성화 분야의 집중 육성이 가능해졌고 학제간 연구로 다양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산업현장 애로를 해결하는 연구 성과를 이룬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제도 여전히 남아있는 게 사실. 후발 국립대여서 발전기금 모금이 어려워 교육 및 연구의 수월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재원조달이 곤란하고, 취업률이 낮은 것도 학교측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김진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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