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개인회생제 접수창구를 찾은 직장인 이모(40)씨는 상담원과 함께 2시간이나 준비해온 서류들을 검토한 끝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이미 개인회생제가 시작된 지난달 23일 한차례 법원을 찾았다가 서류미비로 헛걸음을 했던 이씨는 허탈한 표정으로 법원 정문을 나섰다. “지난 번엔 안내책자에 ‘변제계획안은 신청 후 14일 이내에 내면 된다’고 돼 있어 다른 서류만 준비했다가 낭패를 봤는데, 오늘은 소득금액 계산방식이 틀렸다고 합디다. 빚 진 사람이 어쩌겠습니까. 다시 한번 오는 수 밖에.”
개인회생제가 시행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신청절차가 까다로워 개인 채무자가 직접 신청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3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개인회생제 시행 이후 법원에 다녀가거나 전화로 상담한 개인 채무자는 2,500여명에 달하지만 정작 서류 접수를 마친 사람은 33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들도 일단 서류가 갖춰졌다는 의미일 뿐이어서 앞으로 허위ㆍ부실 기재 여부, 채권자 이의제기 등에 대한 심사와 변제계획안 인가과정까지 가면 ‘회생 기회’를 얻는 사람은 더욱 줄어들 게 뻔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개인회생제가 악성 채무자들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당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1일 법원을 찾은 정모(55ㆍ여)씨는 “용어도 생소하고 준비해야 할 서류도하나 둘이 아니다”라며 “법원에서 설명회를 듣기는 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공무원인 김모(38)씨 역시 “금융기관별 채권 목록과 재산목록, 수입ㆍ지출 목록 등 10여가지 문서를 빠짐없이 적도록 돼있고 각각에 대한 증빙 자료까지 모두 갖추다 보니 서류만 100쪽을 훌쩍 넘었다”며 “직장 상사 눈치를 보고 4일간 휴가를 내 금융기관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수주일 전부터 준비했지만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법원이 신청인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데 기여했던 1대1 상담이나 집단 설명회도 이번 주부터는 어려울 전망이다. 법원 관계자는 “그 동안 상담을 맡았던 법원 회생위원들이 이번 주부터는 본연의 업무인 심리에 들어가는 만큼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며 “앞으로는 법원의 개입 없이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 변호사나 법무사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다.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들도 절차 등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일대 몇몇 변호사와 법무사 사무실에 문의한 결과 “개인회생 사건은 취급하지 않는다” “준비가 덜 돼 있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법무사협회 관계자는 “회원들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절차 등이 워낙 어려워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실토했다.
법원측은 “개인회생제는 채무 원금까지 탕감함으로써 채권자들의 권리를 빼앗는 강력한 제도인 만큼 가볍게 처리할 수 없다”며 “채권ㆍ채무 관계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서류와 절차가 복잡한 것은 당연하다”고밝혔다. /김지성기자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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