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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조상님 곁으로 '가족소풍'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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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조상님 곁으로 '가족소풍' 가던 날

입력
2004.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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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추석 무렵 고향의 조상님 산소에 벌초하러 가는 것은 우리집 연례 대사가 되었다.올해도 팔순 어머님을 모시고 아들과 두 동생을 데리고 고향 전북 남원을 향해 달렸다. 마을 앞과 뒤로 길이 뚫리고 집들이 새로 생겨나면서 몰라보게 변해가는 고향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동네 어귀 선바위는 그렇게도 작아 보일 수가 없고, 어릴 적 그네를 타던 아름드리 소나무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산소에는 풀이 우거져 있었고 아래쪽에는 지난해 심어 놓은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풀숲에 가려져 있었다. 아들, 조카, 후손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날 파란 하늘 사이로 노랗게 여문 대추와 감이 주렁주렁 열릴 것이라며 나는 희망의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자주 찾아와 돌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얼마나 자랐을까 궁금해지는 것은 이곳을 찾는 재미를 더해준다.

조상의 산소를 벌초하고 돌보는 것은 예로부터 우리의 미풍양속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뿌리를 튼튼히 하고 지키는 일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고 샘이 없는 물이 흐를 수 없듯이 사람도 뿌리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뿌리는 만물의 질서이자 생명체의 영양공급원이다. 자녀를 사랑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마음도 모두 여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요란한 기계 소리가 산골짝에 울려 퍼진 가운데 우리는 구슬땀을 흘리며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하였다. 베고 뽑고 가지를 도려내고 치우며 말끔하게 단장된 유택 앞에 과일과 술을 차려놓고 절을 올렸다.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탈없이 지내는 것이 조상님들 덕분으로 여겨졌다. 그 복을 한아름 내려받는 마음으로 음복을 하니 “내 새끼들 반갑다”며 조상님들께서도 기뻐하실 것 같았다.

우리와 함께 잡초를 뽑고 일을 하시던 어머님께서는 풀섶에 몇 번을 넘어지시고는 힘이 부치신 듯 혼자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다. 전 같지 않은 모습이 많이 늙으신 것 같아 안타까움이 저려온다. 오랜만에 밖에 나와 땀 흘리며 일한 뒤에 먹는 점심은 별미였다. 어머님이 끓여주시는 얼큰하고 시원한 해물 매운탕이었다. 땀을 많이 흘린 우리에게는 보양식이나 다름없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 둘러앉아 반주도 곁들이며 먹고 더 먹었다.

내년에도 또 함께 오셔서 이렇게 맛있게 끓여 달라고 부탁하자 어머니는 내심 싫지 않으신 듯 “모르겠다!” 하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렇게 오래오래 어머님의 벌초 해물 매운탕 별미를 맛볼 수 있기를 빌었다.

/한휴식ㆍ경기 수원시 고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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