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프리마투르 / 모날디 등 지음, 최애리 옮김 / 문학동네 발행 1만8,800원‘임프리마투르(IMPRIMATUR)!’ 로마 교황청의 사전검열에 의한 출판 허가라는 뜻의 라틴어다. 허가 기준은 글의 진위가 아닌, 가톨릭 신앙과 윤리에 부합하느냐 였다고 한다.
문헌학과 종교학을 공부한 리타 모날디와 바로크음악 전공자인 프란체스코소르티 부부가 장장 10년간 바티칸 고문서실과 도서관에 틀어박혀 쓴 800여쪽 분량의 소설에 권력에 대한 내밀한 반감과 조롱기마저 감지되는 이 용어를 갖다 붙였다.
논문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분야의 세밀한 지식이 그들이 이 소설에 들인공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것이 진실입니다. 오직 소설의 형식만이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소설 ‘임프리마투르’는 중세와 근대가 격렬히 다투던 17세기말, 신권의정점에 섰던 교황 권력과 태양왕 루이14세의 절대왕권, 신유럽 질서를 두고 각축했던 절대군주들 간의 음모와 갈등, 신ㆍ구교 알력에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침략전쟁까지 뒤엉킨 시대의 이야기다.
당시의 역사를 참빗으로 이 잡듯 훑고 있는 소설이고, 승자의 선택에서 배제됐거나 은폐된 역사 발굴기이다.
이 무겁고 웅장한 서사는 1683년 로마의 한 작고 오래된 여관에서 정체 불명의 노인이 의문을 죽음을 당하고, 페스트를 의심한 경찰 당국이 여관을봉쇄하면서 시작된다.
감금된 투숙객은 모두 9명. 여관 주인과 꼽추 사환, 예수회 신부, 의사, 미성의 카스트라토인 멜라니 사제 등이다. 노인의 사인은 독살. 연이어 여관 주인이 모종의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들고, 또 다른 한 투숙객이 실제 페스트에 감염된다. 소설 전개는 멜라니 사제와 사환이 죽음의 수수께끼를 추적하면서 본격화한다.
독살된 노인은 루이14세의 초기 재정총감이자 왕의 노여움을 사, 오지의 감옥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진 니콜라 푸케로 밝혀진다. 그를 죽이지 못한 절대왕권의 약점, 신교파의 지도자인 오렌지공 윌리엄과 교황 인노켄티우스11세의 음험한 사채거래 등이 소설의 주요 서사를 이끌고 있다.
사건은 당대의 음악과 어우러지며 전개된다. 멜라니의 아리아와 그의 스승루이지 로시의 음악… 바로크시대의 작곡가인 코르베타의 곡으로 소설 속에서 ‘신비롭고 마성적인 선율’로 묘사되고 있는 론도곡 ‘신비한 방벽’은 악보 암호학 음모구조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서사는 결말로 치닫는다.
소설은 액자구조로 쓰였다. 고문서를 연구하던 한 저널리스트 부부가 17세기의 여관 사환이 남긴 낡은 일지를 발견, 이를 토대로 소설을 써서 친분이 있던 한 주교에게 건넨 뒤 사라진다.
주교는 원고의 내용을 조사한 결과 모두 사실임을 확인, 교황청 시성성에 출판 허용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전달한다. 그 해가 2040년이다.
2002년 이탈리아에서 책이 나온 뒤 저자들과 절친했던 한 신부가 한직으로 좌천됐고, 출판과정에도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4부작의 첫작품으로 이 책을 썼다. 2, 3, 4부의 제목은 SECRETUM(비밀), VERITAS(진리), MYSTERIUM(의문). 1~4부의 제목을 모두 이으면 “모든 비밀은 공표될수 있지만, 진실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는다”는 뜻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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