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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 파우스트·돈키호테·돈 후안·로빈슨 크루소…'나'를 탄생시킨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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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 파우스트·돈키호테·돈 후안·로빈슨 크루소…'나'를 탄생시킨 주역

입력
2004.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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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인주의의 신화 / 이언 와트 지음 / 이시연 강유나 옮김 / 문학동네 발행ㆍ1만8,000원지식을 위해 영혼을 파는 계약을 맺는 비극적 인물 파우스트, 앞뒤 재지않고 저돌적으로 전진하는 행동형 인간 돈 키호테, 찰나적 향락을 쫓는 전설적 바람둥이 돈 후안, 그리고 28년간의 무인도 생활에서 살아남은 모험가 로빈슨 크루소.

이 4명의 걸출한 서구 근대문학 주인공들은 또 다른 문학작품을 통해 혹은음악, 영화, 연극, 무용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변주해왔다. 그들이 그토록 확대 재생산됐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 출신의 저명한 영문학자 이언 와트(1917~1999)는 이 네 인물이야말로“개인주의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강력한 신화”라고 말한다. ‘근대 개인주의의 신화’는 와트가 40여년에 걸쳐 완성한 역작이다.

인물의 탄생부터 20세기까지 시대의 요구에 따른 변천의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개인주의 이념이 서구 근대문학에 확고하게 자리잡는 과정을 분석한다.

모태가 민담, 전설 같은 구전문학이든 온전한 창작이든, 와트는 네 인물이 문학작품을 통해 모습을 갖춘 시대 배경에 우선 주목한다.

따라서 이 책의 출발점은 크리스토퍼 말로의 ‘파우스투스 박사의 생과 사의 비극적 역사’(1604년), 세르반테스의 ‘재기 넘치는 향사 돈 키호테 데 라만차’(1615년), 티르소 데 몰리나의 ‘세비야의 사기꾼과 석상 초대객’(1630년),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년)이다.

파우스트, 돈 키호테, 돈 후안은 공통적으로 ‘자기중심적 감정 또는 행동,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행동, 생각, 자기본위를 구현하려는’개인주의에 충실한 인물로 그려졌다. 그러나 그들이 탄생한 17세기 전반은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는 세력이 르네상스가 불지핀 개인주의적 열망에 반격을가한 반종교개혁의 시기였다.

작가들은 르네상스적 가치를 추구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환멸과 혼란을 파우스트와 돈 키호테, 돈 후안에 투영했다. 그들은 세상과 대립적 구도를 취했으며 결국 참담한 파멸과 죽음의 결말을 맞는다. 와트는개인주의적 영웅들에 가해진 징벌이 반종교개혁 세력이 르네상스 개인주의자들에 던지는 경고를 상징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계몽주의,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면 그들에 대한 개인주의 신화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파우스트는 괴테에 의해 경험을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개인주의자로, 돈 후안은 모차르트, 몰리에르, 바이런 등에 의해 낭만주의 시대정신을 표상하는 인물로, 돈 키호테는 사회적 평등과 이상을 추구하는 투사적 인물로 재해석된다.

로빈슨 크루소는 시기적으로 앞선 개인주의 영웅들보다 순탄한 길을 걸었다. 작품 속 크루소는 고난을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영웅이자, 청교도와 자본주의 정신에 내재한 개인주의에 찬사를 보내는 인물로 분석된다.

크루소는 개인주의 철학의 기초를 정의한 루소의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원초적 자본주의 개념을 배태함으로써 마르크스 및 당대 정치경제학자들에 학문적 영감을 제공했다.

파우스트, 돈 키호테, 돈 후안, 로빈슨 크루소의 매력은 “자아의 요구와사회의 요구 사이의 투쟁’ 속에서 “적어도 그들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인물” 이라는 데 있다. 그래서 이들의 개인주의 신화는 근대의 산물이지만, 지금도 효력이 살아있다. /문향란기자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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