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모두 17개의 현악사중주를 작곡했다.이걸 하루에 다 듣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작정하고 달려든다 해도틀림없이 질려버릴 것이다. 하지만, 한 곡에서 그 곡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악장을 하나씩 뽑아서 연주한다면 어떨까. 아니, 여러 악장이 모여한 곡을 이루는 현악사중주를 이런 식으로 낱낱이 뜯어내어 연주하는 것이야말로 미친 짓이 아닐까. 곡의 완결성을 해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클래식음악계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 위험한 실험을 현악사중주단 콰르텟 X가 저질렀다. 패기만만한 20대 4명이 모인 이 악단의세 번째 공식 연주회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중 아홉 곡에서 각각 한 악장을 골라 연주하는 이른바 ‘B9’ 프로젝트. 10일 오후 7시 30분 금호아트홀에서 만날 수 있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는 질문에 리더 조윤범은 이렇게 설명한다. “전곡을들으려면 힘들지만, 한 악장을 듣고 그 곡에 흥미를 느끼면 전곡을 들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현악사중주의 대중화를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지요. ”
이번 연주회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중 초기작인 1번을 서곡으로 배치하고, 1부에서 중기 작품인 라주모프스키 현악사중주 1, 2, 3번과 10번, 11번을, 2부에서 후기작품인 13, 14, 15번에 이어 17번 ‘대푸가’로 마무리한다.
해놓고 보니 기승전결을 갖춘 하나의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한다. 신기한 일이지만, 우연도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대충 골라 엮었다간 누더기 조각보가될 테니까.
재미있는 것은 골라낸 악장마다 콰르텟 X가 지은 별명을 붙인 것. 1번의 4악장은 고양이가 털실을 갖고 노는 듯한 느낌이어서 ‘고양이’, 14번의5악장은 통통 튀는 리듬 때문에 ‘팝콘’, 라주모프스키 1번의 2악장은 모르스 부호를 연상시킨다 해서 ‘전보’다. 20대 젊은이다운 발랄한 감각이돋보이는 작명이다. 클래식 중에서도 가장 멀게 느껴지는 현악사중주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콰르텟 X의 독특함은 이런 별난 기획과 작명만이 아니다. 공연 팸플릿도 남다르다. 흔히 보는 팸플릿이 아니라, 각 곡을 설명하는 아홉 장의 타로카드로 대신한다.
손에 쥐고 간편하게 읽으라는 얘기다. 그 동안의 두차례 공식 연주회 팸플릿도 멤버들의 학력 사항은 아예 빼버렸다. 음악만으로 평가해달라는 무언의 주장이자, 학력과 이력을 잔뜩 늘어놓는 클래식 공연 팸플릿의 일반적관행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몸짓이다.
콰르텟 X는 2000년 결성된 젊은 팀이다. 3년 간은 ‘죽어라고 연습만 하자’는 약속에 따라 2002년 9월에야 첫 공식 연주회를 했다. 현악사중주에 미친 네 사람, 조윤범(제 1 바이올린ㆍ29) 오새란(첼로ㆍ24) 김치국(비올라ㆍ27) 이혜령(제 2바이올린ㆍ27)이 뭉쳤다. 모두 외국 유학 경험이 없는순수 국내파다. 이 또한 유학이 통과의례가 되어버린 국내 음악계 풍토에서 보면 돌출적이다.
신선한 파격의 행보로 주목받는 이 팀이 궁금하다면, 이들의 홈페이지(www.quartet-x.com)를 들러 보라. 매우 세련된 디자인과 알찬 내용이 눈길을끈다. 연습과 연주 실황을 오디오파일의 ‘웹CD’로 만들어 공개하는 것도국내 클래식계에서는 보기 힘든 신선한 아이디어. 홈페이지는 현악사중주에 대한 깊이 있는 포럼과 팬들이 뽑은 인기곡 차트, 팬클럽 게시판도 운영하고 있다. 예매 1588_7890
/오미환기자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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