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 하루 전인 1일 서울 남대문로5가 안경상가 골목 깊숙이 있는 ㈜월드포커스에서 희끗희끗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쓴 김두원(70)씨가 안경알 꾸러미를 허리춤에 차고 나와 잰 걸음으로 명동쪽을 향한다.15분 후 안경점에 주문한 안경알을 배달한 뒤 사무실에 들어서는 그의 등산용 조끼에서는 땀이 흠뻑 배어난다. 다음 거래처로 갈 물건을 챙기는 김씨는 “명동거리 젊은이들이 쓰는 안경의 렌즈는 다 내 손과 발 품을 거친 것”이라고 자랑한다.
김씨가 일하는 이 회사에는 70세 동갑내기인 할아버지 5명이 근무하고 있다. 직원들이 안경점에서 주문한 안경알을 찾아내 착색과 코팅 등 가공을 한 후 포장해주면 남대문시장 등 전국 각지로 배달하는 것이 이들 ‘고희(古稀) 5인방’의 천직. 안경알을 잔뜩 들고 걷거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돌아다닌다.
이봉용씨는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베테랑. 우체국을 정년 퇴직한 후 줄곧 안경알 배달을 하고 있는 그는 대뜸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 좀이 쑤셔”라고 말했다. “서울시내 안경점 100여 곳의 위치와 주변 지리는 손금 보듯 훤하다”는 이씨는 “한창 때는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배달을 나갔는데 지금은 노는 시간이 더 많아 불황을 실감한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회사를 퇴직한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다 5년 전 이 일에 뛰어든 김호영씨는 “재미도 있고 여기저기 걷다 보면 자연스레 건강도 챙길 수 있어 너무 좋다”고 웃었다. 김씨는 “아파트 경비원도 65세가 넘으니까 나가라더군. 칠순 노인이 일할 곳이 마땅치 않은데 용돈을 내가 벌어 쓸 수 있어 좋아”라고 귀띔했다.
“한번은 만보기를 차고 일을 해봤더니 하루 5만보나 걷는 걸로 나왔어.” 서백종씨는 아예 경영하던 안경점을 그만 두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 “나이 먹으니까 안경 가게 손님이 끊겼다”는 그는 도서관 서고처럼 온갖 종류의 안경알이 가득 들어찬 공장 창고에서 희귀한 알을 잘도 찾아낸다.
“가끔은 엉뚱한 물건을 배달하거나 깜빡 졸다 지하철에 두고 내리기도 하지만 모두들 웃으면서 받아주는 것이 고맙다”며 다시 배달을 나갔다.
젊은 시절 인사동에서 서점을 했다는 송해룡씨는 “한달 급여가 70만원이어서 용돈이나 손자들 선물 값에 불과하지만 매일 아침 출근할 일터가 있다는 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배송하는 안경알은 하루 1,500여쌍. 하는 일은 고되지만 칠순 5인방은 몸이 아파 쉬어 본적도, 불평을 해본적도 없다. 출근시간은 아침 9시지만 모두 30분전에 회사로 나온다. 남대문 일대 20여개 안경렌즈 도매업체에는 이들 나이의 배달맨이 한 가게에 3명씩은 일하고 있다.
이종호(39) 사장은 “젊은 사람들은 체력과 끈기가 필요한 배달 업무를 기피하고 오래 다니지도 않는다”며 “경기가 좋지 않아 더 많은 어르신들을 고용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김호섭 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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