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보낸 자연은 결실의 색으로 충만하다. 너른 들판의 벼들은 낟알의무게에 못 이겨 누렇게 고개 숙였고, 사과 배 감나무의 가지들은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단풍으로 곱게 치장하기 시작한 가을 산에도 온갖 열매와 뿌리가 여물었는데 그 중 ‘산의 보물,산신이 빚은 별미’로 꼽는 송이버섯이 가장 많이 나오는 때도 바로 지금이다.
대부분의 버섯은 썩은 나무에서 발아돼 기생하지만 송이는 살아있는 소나무 뿌리에 움을 틔우는 영물. 자라는 환경이 워낙 까다로워 아직도 인공재배가 불가능한 게 송이다. 그래서 더욱 귀하고, 그래서 더욱 오묘한 맛을내는 게 송이다.
아무나 쉽게 즐길 수 없는 송이를 찾아 운동화 끈 조여매고 나뭇가지 하나꺾어 들고는 산으로 올랐다.
송이를 찾아 떠난 곳은 경북 울진의 산골, 청정계곡 왕피천이 흐르는 근남면 구산리의 산 자락이다.
길을 안내하던 울진군청 산림과 김진업 계장은 “남한 땅에 호랑이가 산다면 설악산이나 지리산이 아닌 이 곳 울진일 것”이라 했고, 송이 전문가 이종진(53)씨는 “지금 제철인 은어가 왕피천에 가득한 데 굵기가 고등어만하다”며 “수달과 산양이 자주 목격되는 첩첩산중으로 멧돼지는 ‘천지빼까리(많이 널려있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했다.
비포장인 임도를 따라 차로 한참을 올랐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재로 치는 금강송의 군락지, 울진 땅의 한 복판이다. 차에서 내려 산비탈을 오르니 주위는 온통 소나무 숲. 금강송 구경에 마냥 빠져있을 때 소리가 들려왔다. “예가 송이밭이라예.”
그때부터 눈에 불을 켜고 숲의 바닥을 휘둘러 보지만 송이는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그 곳에서 송이를 캐던 마을 주민 김종호(67)씨가 슬며시 바닥의 낙엽 뭉치를 한 줌 집어 드니 예쁜 송이가 새치름히 고개를 내민다.
송이가 햇볕을 받으면 갓이 퍼져 값어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새끼손가락 마디 만큼 송이가 올라오면 그 위를 흙이나 낙엽으로 덮어두는 것. 한데 송이의 예민함 때문일까, 사람이 덮어놓았던 것보다, 그 옆에 숨어있던 것이 나중에 훨씬 크게 자라나는 게 송이다.
솔숲 한 켠에 십여 송이가 모여있는 ‘송이 노다지’를 감상하고는 산등성이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니 황토로 바닥을 닦고 통나무 기둥에 비닐을 덧씌운 자그마한 움막이 나타났다.
마을 주민들이 송이를 캐다 잠시 쉬거나 밤새 산을 지키기 위해 지은 막사다. 이 산자락은 군유림으로 해당 주민들에게만 송이 채취권이 있어 송이철이면 모두가 번(番)을 지어 산을 지켜가며 송이를 캔다.
멀리서 찾아왔다며 한 분이 군불로 물을 끓여서는 조금 전 캔 송이 하나를 익혀 내왔다. 쭉쭉 손으로 뜯어놓은 송이 한 점을 들었다. 긴장감속에 한입 깨물자 말로만 듣던 송이 향이 확 퍼져 나온다. 쫄깃쫄깃 씹히는 맛은연한 고기 같았고 진한 송이 육즙이 새어 나왔다.
“거 먹을만 하오?” 하지만 아까운 향이 샐까 입도 못 벌리고 엄지 손가락만 치켜 들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이번엔 A등급으로 잘 생긴 송이 하나를 꺼내와 생으로 썰어내준다. ‘송이 회’다.
갓 딴 송이를 생으로 한 입 무니 이는 또 다른 맛이라. 솔 향은 더욱 짙어입안은 물론 코와 눈까지도 ‘싸아~’ 하니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생밤을 씹는 듯 오드득 오드득 하는 질감은 최고의 송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김 계장은 “먼저 축제를 연 양양, 봉화가 송이로 더 유명하지만 실제 전국 송이 생산량의 23% 이상을 담당하는 울진이 최대의 송이 생산지이고 송이의 맛과 향도 최고”라고 자랑했다.
▲ 울진송이축제-어떻게 즐기나 "송이캐기 참가비 1만원… 산림욕은 덤"
경북 울진군의 송이축제는 올해가 3회째로 울진읍의 연호정 일대에서 성류문화제와 군민체육대회와 함께 열린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태풍 매미, 루사 등으로 취소됐었다.
송이축제의 최대 장점은 무엇보다 저렴한 값으로 질 좋은 송이를 맛볼 수있다는 것. 행사장에서는 송이시식 및 송이요리 판매코너와 직판장이 운영된다.
송이를 직접 따보고 싶다면 송이채취 체험에 참여하자. 전화 예약은 끝났지만 축제 당일에도 행사장에서 신청을 받는다. 참가자는 주 행사장인 연호정에서 오전 오후로 나뉘어 버스를 타고 송이가 많이 나는 산으로 이동해 직접 송이를 캔 뒤 한 뿌리씩을 가져갈 수 있다.
참가비는 1인당 1만원. 솔내음 가득한 금강송 숲을 거닐며 삼림욕도 겸할수 있어 가을 웰빙여행으로 제격이다. 울진군청 산림과 (054)783-5119
울진군 산립조합 관계자는 “장기 저장이 어려운 송이는 축제장에 와야 저렴한 가격에도 뛰어난 맛을 볼 수 있다”며 “A등급의 3분의 1 가격인 C등급이나 등외품도 송이의 맛과 향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추천했다.
송이 시세는 송이의 변덕스러움 만큼이나 오락가락해 매일 바뀐다. 조합에서 오후 4시50분 발표되는 공판가가 송이 판매 가격의 기준이 된다.
울진에서 채취된 송이의 절반 가량은 조합에서 일괄 구매하고, 나머지는 이종진씨가 운영하는 해인송이직판매장(054-782-2340) 등 여러 송이판매장에서 거래되니 축제기간 방문하면 서울 등지 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전화로 신청하면 택배로 배달도 해 준다.
▲ 울진은 관광천국-볼거리·먹거리 "망양정 불영사 온천 휴양림 대게…"
청정계곡과 바다, 깊은 산. 경북 울진은 천혜의 관광 명소다.
조선시대 송강 정철이 꼽은 동해안 최고의 경승지 관동팔경(關東八景) 중망양정과 월송정 2곳이 울진에 있다. 봉화 영주로 향하는 36번 도로 변에는 15㎞ 길이의 협곡 불영계곡과 신라 때 창건됐다는 비구니 도량 불영사가 있다.
울진에는 유명 온천이 2곳이나 있다. 후포 인근의 백암온천과 덕구계곡의덕구온천. 이중 덕구온천(782-0677)은 국내 유일의, 분수처럼 온천수가 솟는 용출온천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최신식 시설의 스파로 거듭났다. 야외온천장은 숲과한데 어울려 온천욕과 삼림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덕구온천 인근의 구수곡자연휴양림(783 –2241)은 솔숲과 함께 황토로 마감질한 깨끗한 통나무집 등을 갖췄다. 울진읍과 가깝고 도로에 인접해 진입이 쉽다. 봉화군과 인접한 통고산에도 통고산자연휴양림(783-3167)이 있다.
울진은 송이와 함께 대게도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이다.
대게를 잡는 철은 12월에서 5월까지. 나머지 기간에는 대게와 홍게의 중간정도 되는 ‘너도대게’를 잡을 수 있어 대게를 대신할 수 있다. 모양도 비슷하거니와 맛이나 크기도 대게 못지않다. 죽변항 방파제가의 충청도횟집(783-6651)이 전직 군 장교 출신 주인의 솔직하고 푸짐한 인심으로 인기가 높다.
/울진=이성원기자sungwon@hk.co.kr /사진작가 김건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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