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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얼굴] "전봇대 위 삼형제야, 어찌 사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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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얼굴] "전봇대 위 삼형제야, 어찌 사누?"

입력
2004.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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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만, 남일, 남수 삼형제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해마다 여름이 오고 장마가 지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1962년 8월 23일 전남 순천 물난리를 잊을 수가 없다. 하룻동안 360mm라는 엄청난 폭우가 내려 시가지가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하룻밤에 32명이나 사망자가 난 엄청난 수해였다.

냇가 쪽 동외동은 깡그리 씻겨 내려가고 자갈만 구르는 냇바닥이 되어 버렸고, 저지대 몇 개 동은 완전히 물에 잠겼다.

나는 그 무렵 초등학교 4학년 정만이와 2학년 남일이 가정교사를 하면서 사범학교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었다. 요즘과 달리 겨우 하숙비를 안내고 밥을 얻어먹는 정도였다.

바로 그 날 밤 우리는 집안에 물이 차 들어 오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 아이들을 들쳐 업고 빠져 나왔다. 4학년짜리야 스스로 잘도 달리지만 2학년 남일이는 잠이 덜 깨어서 비틀거리고 5살짜리 남수는 내가 업고 달렸다.

당시 순천 시내에서 가장 컸던 개성당 서점 앞에 이르자 물이 목에 차도록 깊어지고 더 이상 갈 수 없을 만큼 거세졌다. 서점 앞 커다란 전신주 옆으로 피했다.

거기에는 변압기가 얹혀 있어서 올라가기 쉽게 발 디딜 자리가 있었다. 일곱 식구가 매달린 전봇대는 열매가 잔뜩 달린 과일나무 같았을 것이다. 이때가 밤 12시10분쯤 됐다. 전신주 위에서 주인 아주머니의 옷 보따리에서 치마 하나를 찾아내 우산 삼아 비를 피하려 했지만 어림없었다.

더구나 밤중이라 아이들은 자꾸만 졸기 시작하는데 그러다 떨어지면 영영찾을 길 없이 바다로 떠내려 갈 판이니 억지로 흔들어 깨우고 이야기를 했다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꼬집기도 하였다.

통나무들이 떠내려가면서 집들을 휩쓸어 가는데 우지끈 하는 소리에 간이 콩알만해지기도 했다. 온 식구가 캄캄한 아래쪽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새벽 3시 50분쯤에야 비가 조금 멎었고, 아래로 내려오니 물바다가 가슴을 넘었다. 이후 2층 화물회사 사무실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이제 나이50이 넘었을 아이들의 소식이 궁금하다. 장마 때만 되면 그 날이 생각나고 그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ksu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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