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백모가 갑자기 작고하셔서 부랴부랴 청양에 있는 상가에 가게 되었다. 아내는 부엌에서 일을 거들다 자정이 되어서야 이웃집 작은 방 하나를 얻어 눈을 붙이게 되었다.아내는 자리에 눕자마자 이내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가 심상치 않다. 코 고는 소리가 우레 같다.
다른 때 같으면 당장 베개 들고 딴 방으로 도망이라도 치련만 그럴 수도 없고, 너무 시끄러워 코를 쥐려다 곤한 잠을 깨울까 봐 멈칫했다. 내 눈치살피랴 집안 일 도우랴 다른 때보다 몹시 고단했나 보다.
코 고는 소리를 듣자니 요즘 부쩍 아내 몸이 약해진 것 같아 불쌍하고 애틋한 마음이 든다. 매일 같이 화장대 앞에서 주름살 덮느라 이리저리 문지르고 두드리는 모습이 안돼 보였었는데.
중노년에 들어선 아내. 세월이 어찌 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달려온 터다. 남매 키우느라 얼굴 한 번 제대로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대학만 보내면 모든 걱정 사라지려니 했는데 이제는 멀리 출가한 딸 걱정에, 아들 녀석 짝 찾아주는 일까지 염려가 아닐 수 없다. 웬만하면 엄살은않던 아내건만 요즈음은 이곳 저곳 결리고 쑤시고 안 아픈 곳이 없다며 움직일 때마다 ‘아이구, 아이구’ 소리를 달고 산다.
못난 남편 만나 호강 한 번 제대로 못하고 같이 산 30년 동안 변변한 보약한 제 지어 먹이지 않았으니 강철같은 몸이라도 배겨날 길이 없었으리라.낙제 남편을 면할 길 없다.
미안한 마음에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가슴 가득 파도처럼 밀려든다. 잠에 빠진 아내의 손을 슬며시 잡아보았다. 제법 포동포동하고 예뻤던 손이 까칠까칠한 할머니 손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상처한 친구집에 문상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초췌하게 서서 문상객을 맞던 친구의 쓸쓸한 모습을 보고 울컥 가슴이 메어졌다. 늦게 결혼해 이마에 여드름을 덕지덕지 매단 고등학생 두 아들을 남기고 떠난 그 아내는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아내를 집안의 기둥이라 했던가? 친구는 슬픔을 삼키며 말했다. 비어 있는 아내의 자리가 그렇게 크고 넓을 수 없노라고…. 이제부터라도 아내의 건강을 챙겨보리라. 우레 소리도 좋고, 전차 지나는 소리도 좋으니 제발 아프지만 말아주오.
/박보순 대전 기성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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