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궁중 음식이나 의복 음악 무용은 학자들에 의해 많이 연구되고 소개됐습니다. 하지만 궁궐의 장식 문화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하다 해도과언이 아닙니다.”5~10일 서울 덕수궁에서 국내 처음으로 궁궐의 꽃장식 문화를 재현해 소개하는 ‘조선왕조 궁중 채화전(綵花展)’을 여는 황수로 한국꽃문화학회 이사장은 “전시회를 통해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장식 문화를 엿볼 수 있게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에 재현되는 것은 1902년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덕수궁 중화전에서 열린 궁중연회. 당시 연회장 곳곳을 장식했던 ‘궁중채화’를 그림과 함께 상세히 기록해 놓은 고서인 ‘고종 임인년 진연 의궤’를 완벽히 고증해냈다. 이에 따라 중화전은 홍도화 벽도화 목단 연꽃 등 형형색색의 10만송이가화(假花)로 치장된다.
“궁중연회는 궁중 무용과 음식 등 궁중 문화가 총체적으로 표출되는 왕조문화의 꽃입니다. 더불어 연회 등에 사용된 궁궐의 꽃장식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죠.
자연이 아닌 사람이 만든 꽃은 가화라 하는데 한국의 가화에는 종이로 만든 지화, 꿀을 빼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밀납화, 떡으로 만든 병화, 그리고 비단을 물들여 만든 채화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채화는 궁중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귀한 꽃입니다.” 이번전시에도 옛날처럼 순수한 한국산 비단에 꽃물과 풀물, 과일물을 들이는 등 자연염색한 것들만을 사용한다.
“조선 왕조에서 꽃은 음식을 장식하는데 절대 역할을 했습니다. 음식물 위에 꽂아 화려함을 드러낸 것으로 상화(床花)라고 부릅니다.” 채화전에는 유독 음식 위에 전시되는 종류가 많은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새롭다. 음식의 높이도 모두 고증에 철저, 한자 일곱치(약 50㎝) 높이로 쌓았다. 음식들은 모두 조선왕조 궁중음식 무형문화재인 황혜성 선생이 만들어줬다.
“궁안을 장식했던 촛대, 항아리, 그리고 무희들이 춤을 추는 무대였던 지당판에도 꽃들이 화려하게 장식됩니다. 모두 고서에 나와 있는 그림 그대로죠.” 중화전 바깥에도 기둥을 받쳐주는 꽃장식인 화안(花案)이 설치되고 역시 또 하나의 지당판 꽃장식이 세워진다.
황 이사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40여명의 제자들과 1년6개월 동안 거의 매일 꽃을 만들었고 직접 손으로 만든 꽃들은 밀납처리를 마쳤다. “꿀에 담갔다 꺼내니 꿀향이 채화에 배어 마치 살아 있는 꽃인 듯 벌과 나비들이 날아들었죠. 벌꿀로 코팅을 하게 된 셈이라 꽃향기가 배이고 자유로운 형태와 표정을 만들어 내기가 한층 수월했습니다.”
옥으로 만든 나비, 항아리, 유기그릇 등 전시에 사용되는 모든 기물도 철저한 고증을 위해 무형문화재들이 기꺼이 도움을 줬다. 그는 “처음 채화전만 생각했는데 제대로 하려다 보니 기물까지 욕심이 생겼다”며 “옥장장주원, 유기장 이봉주, 매듭장 김은영 선생등 1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원래 설치미술가로 대나무 작품전만 50여회 해 온 그로서도 이번 채화전은첫 시도다. 1988년 한국꽃예술문화사를 출간하면서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실행에 못옮기다 때마침 2~8일 국내에서 2004세계박물관대회가 열리게 되자 기념특별전으로 전시회를 감행했다.
“전세계 박물관 관장 등 문화 유산 관계자 3,500여명이 한 자리에서 모입니다. 이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궁중 꽃장식 문화를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기회이지요.” .
태창기업 창립자인 일맥 황래성씨의 장녀로 일맥문화재단 이사장과 동국대석좌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황 이사장은 이번 전시 비용을 모두 사비로 충당했다. 작품들은 전시후 모두 국립박물관에 기증돼 영구보관될 예정이다. “우리 궁궐이 너무 비어 있지 않았나요? 누군가가 나서서 채워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사진 류효진기자, /박원식기자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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