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독립기념관장으로 1일 취임하는 김삼웅(金三雄ㆍ61) 관장은 역대 어느 관장 못지않게 ‘새로운 독립기념관’에 대한 포부가 넘쳤다.공모제로 인선이 바뀐 뒤, 처음 독립기념관 운영을 맡게 돼 안팎의 기대가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20대 초반 ‘사상계’ 신인논문상에 입선돼 문필생활을 시작했고, 신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 기자로 출발해 20년 넘게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야당 기관지 편집을 맡았던 그는 일찍이 “독재정권의 뿌리는 친일파와 친일언론”이란 걸 깨닫고 친일문제연구에도 몰두해 지금은 그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연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3년 임기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장을 받기 전까지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 독재와 싸우다 수배 당하고, 고문 받아 투옥된 데 비할 건 아니지만, 공모 심사 때부터 몇몇 언론이 일부 독립유공자 후손을 앞세워 ‘독립유공자 가족이 아니다’는 이유로 시비를 삼았다.
1만7,000여권을 헤아린다는 책이 반쯤은 점령해버린 서울 성북구 정릉 골짜기의 집에서 그를 만나 인선과정과 독립기념관 운영구상을 들었다.
-일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독립기념관장은 유공자쪽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독립유공자 후손 15명이 청와대에 그런 내용을 건의했다고 일부 신문이 보도하면서 이 문제가 불거졌다. 그 서명은 독립기념관장을 희망한 유공자후손이 받았던 것인데, 그 사람은 아예 지원을 포기했다. 그와 별도로 관장 최종결정 전에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에서 반대성명이 나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는 광복회 전체의견이 아니다. 관장 심사를 진행한 ‘독립기념관장 추천위원회’ 7인 위원 중에는 독립지사 유흥수 선생을 비롯해 윤경빈독립기념관 이사장,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 등 독립유공자ㆍ유족이 3분 포함됐다. 독립운동단체나 유족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됐다고 본다. 독립기념관장 내정 보도가 나간 뒤 광복군동지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에서 축하전화가 잇따랐다.”
(독립유공자 후손이 독립기념관장이 되어야 한다는 15인 성명서의 첫 줄에 서명한 안춘생 초대 독립기념관장은 “(서명은) 같은 값이면 후손 중에서 나오면 좋다는 의사의 표시였지 다른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었다”며 “정부에서 잘 심사해 적임자를 골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광복회 김유길 사무총장도 “대전충남지부가 성명을 내기 전 서울에 와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더라”면서 “법률에 따라 공모제로 바뀌었다면 그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해서 보냈는데 그 후 개별 행동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최종 결정이 나기 전에 심사점수를 알고 신문에 기고한 것은 문제가 있지않나.
“추천위원들이 문화부에 심사내용을 올린 훨씬 뒤 지인을 통해 내가 1위이고 2, 3위와 점수 차이가 꽤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에 그 내용을 신문에 쓴 것은 성급했다.
하지만 조선ㆍ동아일보가 관장 선정과정을 정당인과 독립운동가의 대결처럼 몰아가는 등 일방으로 매도하는데 분노했고, 자기보호 차원에서 투고한것이다.”
-조선ㆍ동아일보가 유독 김 관장을 문제 삼은 이유를 뭐라고 보나.
“기회 있을 때마다 저술과 강연을 통해 친일 언론의 잘못을 지적해왔다.이런 나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립기념관장에 의욕을 낸 계기는.
“독립기념관 개관 즈음에 기념관 정문쪽 뜰에 병에 잘 안 걸리고 꽃이 오래간다고 일본산 무궁화를 잔뜩 심었던 적이 있었다. 그 문제를 어디에 글로 썼고, 그 뒤 무궁화를 다 뽑아내게 됐다. 반독재투쟁과 함께 친일파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 친일파 연구를 하다보니 자연 독립운동사 연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3년째 독립기념관 이사를 맡아 운영에 참가하면서 기념관을 독립운동자료관으로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는 민족정기의 산실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현재의 독립기념관 운영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독립기념관은 권력기관이 아니다. 이런 기관은 정부가 전폭으로 지원해서 육성해야 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야드바셈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미국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등은 정부에서 예산 100%를 지원한다. 지금 독립기념관은 80% 정부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입장객 수입으로 유지된다.
170여명이던 독립기념관 직원이 최근 2,3년 동안 거의 절반(92명)으로 줄었다. 독립기념관은 국가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돈을 못 버니까 인력을 줄여야 한다’는 식의 상업논리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운영 뱡향은.
“독립운동사 연구활동을 진작하기 위해 석ㆍ박사 과정의 민족대학원 건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의 독립운동사 연구인력을 보충하는 것은 물론 전문연구자를 양성하고, 일반시민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청강과정을 개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다. 또 경찰, 군인, 교사 등 공무원들이 일정 직급 이상으로 승진할 때는 독립기념관에서 국난극복사 등의 교육과정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했으면 한다.
독립운동가와 학교, 단체 등이 ‘사제의 정’을 맺는 프로그램도 도입할만하다. 또 현재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6만점이 넘는 자료를 다양하게 활용한 특별기획전을 적극 도입할 생각이다. 매달 관련 있는 독립운동활동 전시회, 친일파를 고발하는 자료전 등을 열어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참관자를 적극 유치할 계획이다.
개인이나 단체가 해당 인명이나 기관명을 기록한 태극기를 게양하는 ‘태극기동산’이나, 일본인들이 지난 시절 제국주의의 과오를 둘러볼 수 있는‘평화와 화해ㆍ미래를 위한 광장’을 조성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김범수기자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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