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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성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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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성묘 가는 길

입력
2004.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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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 날 추석 성묘는 마치 집안의 가을 소풍과도 같았다. 도포 차림에 갓을 쓰신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 아버지와 다섯 명이나 되는 당숙들, 또 우리 사형제와 세명의 재종형제들, 성묘 제수거리를 담은 함지를 머리에 인 어머니와 당숙모, 어림잡아도 열 다섯 명의 식구가 성묘를 나선다.성묘를 마치곤 산소 가에서 점심 겸 음복을 하고, 그 산 아래 밤나무 숲에서 밤을 따온다. 우리는 밤보다 다래와 머루에 관심이 더 많다. 이건 어른들보다 우리가 있는 곳을 더 잘 안다. 여름 내내 소를 먹이러 다니며 봐 둔 게 있기 때문이다. 다래는 처음 나무에서 딸 때엔 비려서 먹을 수가 없다. 그것을 따뜻한 방안에 하루쯤 묵혀두면 저절로 말랑말랑해지며 단맛이 난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다음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가 산소에 가 누우시고, 큰집 작은집에 열명도 넘게 늘어난 증손자들이 추석날 아침이면 밤나무 산으로 할아버지를 뵈러 간다. 아버지가 예전의 할아버지만큼 늙으신 모습으로 여전히 열 명도 넘는 대 부대를 이끌고 성묘를 가신다. 성묘 가는 길, 할아버지가 젊으신 날에 심은 밤나무 산의 밤나무들도 어느 결에 사람처럼 세대교체가 되었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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