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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추석보내기

입력
2004.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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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한 대기업 임원은 길이 막히지 않고 차가 잘 빠지는데 기분은 황량하더라고 말했다. 명절이 다가오면 시내 교통은 곳곳이 체증이고 요소 요소에 선물 돌리랴, 인사 다니느라 바빴던 예전과 비교하며 한 말이다. 불황으로 돈도 사람도 돌지 않는 냉랭한 추석경기를 거리에서 이렇게 느꼈다고 그는 전한다. 그가 일하는 회사는 명절이 오면 수억 원 씩의 예산을 쓰곤 했었는데, 올해엔 아예 그런 돈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기업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면 백화점이고, 시장이고 추석경기가 저조했던 하나의 이유가 됐을 것 같다.■추석을 앞두고 그 회사는 ‘받지도 주지도 말라’는 특별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거래 관계자들로부터의 선물을 일절 거절할 것은 물론, 통상 주어야 할 곳도 신경 쓰지 말라는 지시라는 것이다. 그 임원은 평소 친분 있는 공무원이 “전화 연락도 하지 말아달라”고 먼저 ‘부탁’하더라는 말도 전했다. 얼마 전 대한 상공회의소가 부패방지위원회 등에 공무원 사회의 ‘선물 안 받기’운동이 추석경기를 가라앉히고 있다고 호소했던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어붙고 위축돼 미풍양속의 선물문화까지 움츠려 들었던 것이라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뿌리깊은 부패문화가 선량한 선물문화를 오염시킨 때문이지만 부자연스러운 억압적 분위기는 공연한 사람들만 상하게 했을 지 모른다. 그래도 추석 친지들과 어울린 자리는 언제나 처럼 반갑고 따뜻했다. 외진 곳의 썰렁함, 소외당하거나 낙오된 사람들이 느꼈을 쓸쓸함은 더했을 수 있지만 명절이 없다면 한 해 보내기는 얼마나고단하기만 할 것인가.

■집안 잡사(雜事)에서 나라 일까지, 낙담에 덕담도 오갔을 자리들은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 갈라져 싸우고, 찌르고 격돌하느라 달려온 사이 정치가 추석 정담에 희망을 주었을 리는 없다. 경제를 말하고 미래와 교육을 얘기하다 자식 걱정, 손자 장래에 우울해진 자리들은 아니었을까. 눈이라도 시원해 볼까 보름달을 찾았더니 구름에 가린 달은 희부옇기만 했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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