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시안화나트륨(청산나트륨) 107톤이 중국을 거쳐 북한에 유입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우리나라 전략물자 수출통제시스템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더구나 지난해 10월 전략물자의 북한유입을 확인한 정부가 이 사실을 1년여간 공개하지 않은 점은 은폐 의혹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의 은폐의혹
산업자원부는 24일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당시 수출업체에 대한 검찰고발 등 법적인 조치를 다 했고 외교부를 통해 생화학무기비확산체제인 호주그룹에 이 사실을 통보했기 때문에 굳이 언론에 공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며 은폐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시안화나트륨의 북한 유입 사실을 확인한 뒤 해당 무역업체를 고발조치하면서도 이 사실을 곧바로 공개하지 않은 탓에 최근 시안화나트륨 71톤이 태국을 통해 북한에 유입되기 직전에 차단되는 사태가 재발됐다는 지적이다. 산자부는 지난 21일 태국 사건 경위를 설명하면서도 이번에 새로 드러난 사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산자부 주변에서는 "정부 입장을 궁지에 빠뜨리고 자칫 남북관계에 경색을 가져올 것을 걱정한 나머지 고의적으로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략물자 수출통제 시스템 문제
시안화나트륨은 독일이 2차대전때 개발한 화학무기 '타분'의 원료로 사용이 가능해 국제적으로 생화학무기비확산체제(호주그룹·AG)에 의해 테러국이나 테러지원국으로의 수출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품목이다.
전문가들은 "시안화나트륨이 중국을 경유해 북한에 재수출됐지만 전략물자의 경우 최종 사용자에 대한 확인책임이 수출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국제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출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수출과 제3국을 경유한 재수출의 경우 사실상 적발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대기업 뿐 아니라 수많은 중소업체들도 전략물자를 생산하고 있어 그만큼 관리하기가 힘들다. 이번 북한에 유입된 시안화나트륨을 수출한 국내무역업체도 수출통제시스템을 통해 적발된 것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단속이 심해지자 업체 스스로 산자부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자부는 "1,993개 전략물자의 최종 사용자를 사전에 정확히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의 인식도 허술
전략물자 수출에 대한 업체들의 안이한 인식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시안화나트륨 외에도 국내 한 업체가 2002년 6월 전략물자로 분류된 밸런싱머신(Balancing Machine·선풍기나 자동차 바퀴 등 회전체의 균형정도를 측정해주는 장비)를 수출제한국인 리비아 A사로 무허가 수출한 사실이 적발돼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 시안화나트륨(NaCN)이란 맹독성 혈액·신경제 원료
금·은 제련, 금·은·구리·납 도금, 제초제 원료 등 산업용으로 널리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다. 청산나트륨, 청산소다, 청화나트륨, 청화소다 등으로도 불리며, 청산가리나 청산칼륨으로 불리는 시안화칼륨(KCN)과는 다른 물질이다.
무색 결정으로 대기 중의 습기를 빨아들이고 물에 녹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산(酸)에 분해되면 시안화수소(청산)를 발생시킨다. 한 때 유독물질인 사린가스의 원료로 알려졌지만 관계가 없다. 그러나 시안화나트륨은 화학무기인 혈액작용제나 신경작용제(타분)를 제조하는 원료로 사용될 수 있어 생화학무기 비확산체제인 호주그룹 체제상 각국이 수출을 통제하는 전략물자로 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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