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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있다ㆍ없다-다시 쓰는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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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있다ㆍ없다-다시 쓰는 가족 이야기

입력
2004.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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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ㆍ없다-다시 쓰는 가족 이야기연세대·하자작업장 학교·홍익대 학생 지음

안그라픽스 발행/2만원

‘텔레비전을 없애면 강북의 가족이 해체되고, 애완견을 없애면 강남의 가족이 해체된다’는 우스갯소리는, 실은 지독한 조소(嘲笑)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굳건했던 대가족을 거론할 것 없이, 부모ㆍ자식의 2대를 감싸고 사랑이 혈관처럼 흐르는 살아 숨쉬는 단란한 가정이 공허해진 지 오래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이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말하는 건 흔한 소리가 됐다. “가족? 한국사회에서 그런 건 해체되고 없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 모르겠다.

‘있다ㆍ없다-다시 쓰는 가족이야기’는 현대 한국사회 가족의 실상을 젊은이들의 발랄하고도 진솔한 감성으로 포착한 책이다. 연세대 사회학과(조한혜정 교수)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안상수 안병학 교수),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의 2004년 1학기 가족사회학 수업내용을 모아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 혹시 기성의 사회학 책을 예상하고 책을 펼쳐 든 사람은 내용이 너무 산만하고, 편집은 더 정신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해법을 찾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 책은 서투른 바느질로 간신히 기워 놓은 듯 위태로워 보이는 지금 한국사회의 가정을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묘사해 놓은 것만으로도 적잖은 값어치가 있다.

집ㆍ가족 이야기를 쓰라는 주문에 한 학생은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편안함, 안정감, 친밀감보다는 불편함, 불안함, 이질감을 느낀다”며 “나는 (가족이라는) 거대한 목소리로부터 탈출해서 내 이야기를 쓰고 싶고, 엄마는 엄마만의 이야기를 쓰게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제제가 자신의 아버지를 늙은 나무라고 상상하며 마음 속에서 죽였듯이, 나의 가족들을 마음 속에서 죽였을지도 모른다”며 가족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글도 있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가족묘사만 가득한 건 아니다. “고리에 고리를 잇는 나의 가족들, 정원 한가운데 단풍나무, 언제나 나를 한 몸 가득 안아주는 집” “가족은 하나의 끈이다. 때로는 나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의무로, 때로는 나를 소속해주는 사랑으로 묶어주는 끈” 등 자신을 지켜주고, 많은 것을 가르쳐준 공동체로 가족을 기억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수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과정도 목표가 있다. 그건 책에 부록으로 딸린 강의노트에서 가족사회학 수업을 개관한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가 또렷이 제시한다.

조한 교수는 “봉건적인 대가족이 해체된 뒤 생겨난 근대 부부 중심의 핵가족 제도가 지금 해체중”이라고 지적했다. “핵가족 제도는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을 해왔던 여성들이 대거 공적활동에 참여하고, 텔레비전이 안방으로 침투하면서 가정과 공공영역의 경계가 무너지고 핵가족 제도는 안정성을 잃는다.”그는 “점점 더 강도가 심해지는 시장의 확장과 개인화는 부부 중심 핵가족제도를 해체하고, 더 이상 가족은 없다는 선언을 해도 좋을 지경에 이른다”며 나아가 “근대 가족제도의 해체는 긴 안목에서 볼 때 불가피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할 때”라고 한다.

그를 위해 학생들은 ‘노는 가족’ ‘방목 가족’ ‘따로 살기’ 등 8개의 조로 나뉘어 ‘암중 모색’했다. 유사가족의 관계를 유지하며 쏟아낸 경험들이 딱히 이거다 할만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없다. 주장보다는 체험의 여러 결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치중했다. 그래서 책에서 결론으로 ‘새로운 가족상’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핵가족 이후의 가족제도’는 사회학의 근사한 주제일지 모르지만 65명 학생들의 한학기 수업이 감당할 과제는 아니고, 수업 역시 그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을 테다.

그렇지만 이 책은 자식의 위치에 있는 20대 청년의 관점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웃에게서 바로 자기 가족의 모습을 읽어내는 ‘타자화’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바람난 가족’처럼 위악으로 덧칠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이 책에서 학생들이 ‘가족 해체의 위기’라고 주장하는 조한 교수와 조금 다른 느낌을 보여준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책이 추석 귀향길 당신에게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하고 무겁게 한마디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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