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을 보고 작년에 출간된 박민규의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것도 아니고, 작가와 감독이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다.각자의 문화적 영역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와 관련된 낡은 추억을 같은 시기에 되새기고 있었던 셈이다. 시대의 감수성이 드러난, 의미 있는 우연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삼미 야구단은 패배가 이어지면 절망이나 분노를 넘어 한 편의 희극이 될수 있음을 보여준 팀이었다. 프로야구 첫 해에 거둔 성적은 15승 65패, 승률 1할 8푼 8리였다. 삼미> 슈퍼스타>
당연히 최하위였다. ‘너구리’ 장명부의 활약으로 꼴찌의 반란을 꿈꾼 적도 있지만, 재정난과 성적부진이 겹치면서 1985년 상반기를 끝으로 프로야구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왜 지금에 와서 삼미 야구단을 추억하는 것일까. 문화 생산의 주류로 자리 잡은 386세대의 추억과, IMF 구제금융 이후 집단적으로 형성된 패배자(loser) 의식이 만나는 지점에서, 삼미 야구단이 완성한 패배의 신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이리라.삼미에 대한 문화적 기억이 통속적인 꼴찌예찬이나 패배에 대한 낭만화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패배와 관련된 처절한 기억 속에서, 패했지만 부끄럽지 않은 모습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로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미 야구팀에 대한 문화적 관심은 패배자 의식의 발현인 동시에 패배자 의식의 승화라고 할 수 있다.
삼미 야구팀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패배에 대한 과도한 낭만화에 있지 않다. 놀랍게도 작품의 감동은 패배를 밥먹듯이 했던 사람들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주어진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소설과 영화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 패배자의 모습이 아니라, 평범함이 패배로 규정되어 가는 과정을 제시한다.삼미와 관련된 이야기는 우리사회에서 평범함의 가치가 사라졌으며, 평범함이야말로 1980년대 이래로 우리가 억압하고 배제해왔던 타자(他者)의 가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박민규의 소설에 의하면 삼미의 야구는 “치기 어려운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잡지 않는” 야구였다고 한다. 평범한 야구였던 것이다. 12연패의 개인기록을 가진 감사용은 몰락의 신화일까. 그렇지 않다. 관련자료에 의하면 프로야구 20년 역사상 은퇴 투수는 총 758명이고, 그 중에서 1승 이상 거둔 투수는 431명이며, 나머지 327명은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야구계를 떠났다고 한다. 통산 1승 15패를 기록한 감사용은 평범한 투수였던 것이다. 다만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패배자로 기억한다. 아마도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에는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만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미 야구단에 관한 소설과 영화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평범함,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 패배자라는 낙인을 붙여주었던 평범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범함이 프로야구로 상징되는 사회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추방당했는지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물론 ‘평범을 거부하는 중소 CEO들의 성공신화’ 등과 같은 카피에서 볼 수 있듯이, 평범을 부정하는 지점에서 성공 신화가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평범함의 가치를 승인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회는, 허위의식에 빠져있거나 패배의식에 젖어있을 가능성이 많다.
평범함을 내세워 하향평준화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 평범함의 가치에 걸맞은 자아존중감이 확보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평범을 무시하는 사회란 결국 자신의 자리를 확인할 좌표축마저도 설정할수 없는 사회일 것이다. 평범함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사회, 삼미 야구단을 통해서 현재의 삶을 다시 생각한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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