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리 표류기모리스&매랄린 베일리 지음/신복룡 옮김
서해문집/9,800원
1973년 7월 국내 신문들은 한국의 다랑어잡이 원양어선 월미 306호가 한 영국인 부부를 남태평양에서 구조했다는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집까지 팔아치우고 산 요트로 대서양과 태평양 항해에 나선 모리스ㆍ매랄린 베일리 부부는 난파 당한 뒤 구명보트에 의지해 118일을 버틴 기적같은 사연의 주인공이었다.
구조되던 그 해, 한국과 영국에서 동시 출간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베일리 표류기’가 30년 만에 재출간 됐다.
당장 한 시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침착하게 위기를 넘겼는지, 근처를 지나던 배를 일곱 차례나 놓치고도 어떻게 구조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물고기를 잡아 먹고 빗물을 받아 마시면서 또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했는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별 주문으로 건조한 오랄린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뒤, 파나마 운하를 거쳐 갈라파고스 제도로 향하던 베일리 부부는 1973년 3월 4일 향유고래에 부딪혀 배에 구멍이 나는 사고를 맞는다. 결국 배를 포기하고 구명보트에 식량과 물, 가스난로, 빗물받이, 양동이 등 필수 물품을 옮겨 실은 부부는 무려 118일을 해류에 몸을 맡겼다.거북을 비롯해 각종 물고기를 잡아 날로 씹으며 배고픔을 달래면서도 그들은 삶의 희망을 잃지 않았다. 책을 읽고 토론했고, 카드놀이를 즐겼으며,꼭 살아 돌아가 다시 항해하겠다며 새 요트의 설계도를 그렸다.
특히 강한 의지력를 발휘했던 부인 매랄린은 “우리 생애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리에게 내려진 어떤 시험이며, 우리는 자신의 미래를 기록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며 자신의 미래를 “죽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나아가 “타의에 의한 이 완전한 고독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각자의 성품 속에 깊이 숨겨져 있는 것들을 거리낌 없이 발산했으며, 소위 문명이 쳐 놓은 덫을 과감히 던져 버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할 때는 거의 무한히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놀랍기조차 하다.
초인적인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표류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읽을 거리지만, 30년 만에 다시 이 책을 번역한 신복룡 건국대 교수가 이 책에서 얻은 교훈도 적잖이 감동적이다. “나는 이 글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갖 상처로 괴로워하고 절망하는 분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 당신의 삶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보트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4개월 동안 태평양을 떠돌며 옷핀으로 낚시를 만들어 고기를 낚아 연명하던 이 부부보다 더 절망적이기야 하겠는가?”
베일리 부부는 표류동안 계획한대로 1975년 5월 ‘오랄린 2호’를 타고 두번째 항해에 나서 대서양을 횡단, 남아메리카 동부 해안에 접한 파타고니아의 미개척 해협을 탐험했으며, 태평양과 파나마 운하를 경유해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왔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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