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배우들이 주인공 역을 죄다 꿰차기는 추석 극장가도 마찬가지. 하지만 극장을 나오면 주연의 매끈한 연기보다도, 중년의 조연 배우들이 펼치는 닳고 편안한 연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이번 추석 극장가는 특히 그렇다. 특히 장항선은 ‘슈퍼스타 감사용’과 ‘귀신이 산다’ 에 동시에 등장해 ‘추억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관객의 코끝을 시시때때로 찡하게 하는 이는 바로 윤여정이 연기하는 엄마다. “제 역할은 현우 엄마에요. 배역 이름도 없이 그냥 현우 엄마에요.” 시사회장에서 윤여정이 한 말처럼, 영화 속 그녀는 별 특징도 없이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보통 엄마일 뿐이다.
늦은 밤 들어왔다가, 다음날 아침 후다닥 집을 나서는 아들(최민식)에게“밥 먹고 가. 집에 와서 어떻게 밥 한끼를 안먹고 가”라며 안절부절하지만 아들은 차려놓은 밥상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떠난다. 밥 한끼에 그렇게 애걸복걸하는 사람이 세상에 엄마 말고 또 있을까.
사실 그녀는 김수현 드라마를 통해 정형화한 자기 주장 강하고, 도회적인 여성 혹은 요즘 작가 인정옥의 드라마 속의 보여지는 아이보다 아이 같은 엄마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엄마’와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꽃봄’에서 그녀는 정말 엄마 같아서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의 장점으로‘체온’을 꼽는다면 36.5도 중 10도는 윤여정 덕일 것이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도 김수미가 연기한 ‘엄마’는 꽤나 찡하다. 아들이 거짓말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말 없이 간장게장을 아들의 숟가락 위에 올려주는 김수미의 모습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하긴 30년 연기인생 중 22년을 ‘전원일기’의 일용엄니로 살았으니 ‘누구의 어머니’역에 그만큼 어울리는 이도 없을지 모른다. 이 장면에 등장한 게장은 김수미가 촬영 스태프를 위해 손수 담가 촬영장에 가져 왔다가 우연히 영화에까지 등장했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꼴찌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감독으로 등장, 든든하게 영화를 뒷받침하는 장항선의 연기도 좋지만 역시 ‘귀신이 산다’에서 보여준 빛나는 코믹연기만큼 기억에 남을까. 초반부 온 몸을 던져 관객들의 혼을 빼 놓던 차승원의 코믹연기가 느슨해지면서 지루할 무렵 등장하는 복병이 장항선이다. 장서희의 몸이 장항선에게 빙의되는 장면, 거구의 장항선이 연기하는 여자 목소리와 행동은 배꼽을 잡고 구를 정도로 압권이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우피 골드버그의 몸 속에 패트릭 스웨이지가 들어가는 장면은 ‘저리 가라’다.
외화에서는 ‘캣우먼’의 샤론 스톤이 돋보인다. 올해 마흔 여섯 살의 이왕년의 섹시스타는 주인공 캣우먼(할 베리)에 대응하는 악녀로 등장, 캣우먼의 채찍에 맞아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몽둥이를 들고 우악스럽게 설치고, 화장품 부작용으로 괴물같이 변한 얼굴까지 용감하게 선보이며, 중년배우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중년의 조연배우 만세!
/최지향기자 mis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