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내 소모임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기왕의 모임에 최근 결성된 것까지 합하면 10여개가 넘을 정도로, 그야말로 '소모임 전성시대'다. 이를 두고 다양한 토론 문화를 고취시킨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구난방 현상의 원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지적도 적지 않다.우리당의 소모임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선 최근 들어 국가보안법 개정을 주장했던 의원들이 주축이 돼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국보법 문제 뿐 아니라 앞으로 여러 개혁과제에 대한 신중론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내달 2일엔 청와대나 정부부처에서 관료나 참모진으로 근무했던 의원들이 모여 '일토삼목회(一土三木會)'를 발족시킨다. 또 김교흥 정봉주 의원 등 1960년생 동갑 의원들 7명이 모인 '목련회'까지 만들어졌다.
386 운동권 의원 모임인 '새로운 모색', 재야 출신이 주축인 '국민정치연구회', 친(親)천·신·정계 의원 모임인 '바른정치모임' 등은 이미 당내 주요 세력으로 인정 받고 있다. 개혁당 출신이 주도하는 '참여정치연구회', 청와대 출신 386 의원이 주축인 '의정활동연구센터'도 의욕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다 '아침이슬'(긴급조치세대 의원 모임), '불새'(전문가 출신 의원 모임) 등도 있다.
이 같은 잇단 모임등장에 대해 우상호 의원은 "과거 1인 보스 정당 시대 돈과 공천권을 따라 계파별로 모인 패거리 문화가 아니라 정책과 노선별 모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토론 문화의 활성화 통로라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박찬석 의원)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문제점 지적도 많다. 당내 정책조정위나 의원총회 같은 공식 의견 조율 시스템과의 충돌 문제다. 노웅래 의원은 "소모임은 공식 의견 수렴 기구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에서 머물러야 한다"며 "공조직과 별도로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소모임이 운영된다면 그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소모임의 비대화가 지도부의 리더십 훼손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장영달 의원은 "다양한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지도부가 여론을 수렴해 결정하는 결단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자신들의 주장을 부각시키기에 앞서, 당의 전체적 활력을 어떻게 뒷받침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巨與스럽다?
열린우리당 안팎에서 정국운영 난맥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생·개혁입법 추진이 연이어 차질을 빚는 와중에 내부 노선갈등이 표면화한데다 국회에서도 야당과의 대결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생·개혁입법의 잇딴 처리지연은 과연 여당이 구체적 추진 프로그램과 전략을 갖고 있는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23일 처리를 공언했던 공정거래법과 친일진상규명법은 국감 이후로 처리가 미뤄졌고, 8월 임시국회 때부터 경제 살리기의 핵심이라고 강조해왔던 기금관리기본법도 11월에나 처리가 가능할 전망이다. 특히 국가보안법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의 폐지발언 이후 서둘러 폐지당론을 확정했다가 내부 노선갈등이 심화하면서 당론확정 시기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는 대야 전략과 원칙도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기금관리기본법과 공정거래법의 경우 지난 주 한나라당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당 상임위 통과를 강행하려다 회의를 파행으로 몰고 가더니 이제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상태다. 반면 국보법은 내부 이견 때문에 관련 TF팀마저 해체하면서도 한나라당의 당론이 확정되지 않아 여야간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과반여당이라는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다수결의 원칙을 앞세우다가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여야 합의를 강조하는 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 지도부의 리더십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여기저기서 문제는 불거지는데 당 의장과 원내대표는 '순항하고 있다', '언론이 과장하고 있다'며 자위만 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호남의 한 초선 의원은 국보법 논란을 예로 들며 "충분히 논의됐다는 말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필요할 때는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리는 게 지도부의 역할 아니냐"고 반문했다. 임종석 대변인도 "여론과 야당의 눈치를 살피는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개혁 주도력의 한계를 스스로 드러낸 것은 아닌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도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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