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8시 서울중앙지법 별관 파산부 앞. 법원 업무가 시작되려면 1시간이나 더 남았지만 벌써부터 40~50명의 사람들이 줄서 기다리고 있었다.전국 14개 지방법원에서 개인회생제 접수를 받기 시작한 이날 맨 앞에 서 있던 A(42)씨는 "첫날이라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 같아 5시30분에 나와 기다렸다"며 "그동안 채권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린 걸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빚만 탕감해 준다면 이보다 더한 고생인들 못하겠느냐"며 기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빌딩 관리인으로 일하는 B(44)씨는 "어머니가 30년간 병을 앓고 있어 약값만 한 달에 10만원 이상 들어간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혼자 어머니를 돌보느라 8,000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고 사정을 털어놨다. 그는 "아내마저 힘든 생활을 견디지 못해 떠났고 월급 130만원으로는 중학생인 두 자녀와 노모를 부양할 수 없어 법원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세무사사무소에서 일하는 C(41ㆍ여)씨는 "사업하던 남편이 갑자기 병을 얻은 데다 오빠마저 교통사고로 다쳐 7,000만원의 부채가 생겼다"며 "부디 법원이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9시 업무가 개시되자 신청인들은 새로 개설된 접수창구로 모여들었다. 개인회생 상담카드와 번호표를 손에 들고 초조함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개인회생 접수 1호는 부업을 시도했다가 투자금을 날리는 바람에 7,000만원의 빚을 안게 된 30대 국영기업체 직원에게 돌아갔다. 그는 소득 가운데 생활비 등을 제외하고 앞으로 8년간 매월 28만원씩 갚겠다고 신청했으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남은 빚을 탕감 받게 된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에만 300여명이 몰렸으며 전화상담도 530통 넘게 빗발쳤다. 하지만 서류를 갖춘 신청인은 21명에 그쳤고 이 가운데서도 실제 접수가 이뤄진 것은 8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회생제가 처음 시행돼 생소하다 보니 상담을 받기 위해 온 것이다.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법원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교육을 받고 모의 연습도 해 봤지만 실제 상황이 닥치자 상담 도중 군데군데 모여 직원들끼리 상의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신청인들의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어머니의 빚을 갚기 위해 대신 서류를 준비했다는 D(35)씨는 "용어도 너무 어렵고 기입해야 할 서류만 70여 페이지에 이른다"며 "변호사는 대행비로 200만원을 달라고 하는데 빚 진 사람들에게 그만한 돈이 어디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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