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입은 신사가/ 요리집 앞에서 매를 맞는데….’ 40대 중반 이후 사람이라면 대부분 기억하는 노래 ‘빈대떡 신사’다.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 빈대떡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시름을 달랬던 추억을 되살리는 것은 늘 새롭다. 2차 대전에서 패배해 정신적 공황과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겪었던 일본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 빈대떡 비슷한 것을 부쳐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이름하여 ‘오코노미야키’다.추석 명절엔 차례 음식이 제격이지만 뭔가 별미를 찾는다면 오코노미야키를 한번 맛볼 만하다. 그간 일식당이나 이자카야 같은 곳에서 안주 정도로 간간이 선보이던 오코노미야키가 최근 우리 입맛을 유혹하는 메뉴로 떠올랐다. 오코노미야키는 일본식 철판 요리의 하나. 밀가루 반죽에 고기나 해물, 양배추 등의 각종 재료를 섞어 철판에서 부친 다음 가쓰오부시(가다랭이포)나 아오노리(파래김), 마요네즈 등을 뿌려 먹는 맛이 우리네 빈대떡과 비슷하면서도 색다르다. 집에서도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어 명절 음식, 혹은 간식이나 술안주로도 적당하다.
▲ 오코노미야키란
한국어로는 ‘기호 부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름 그대로 각자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재료와 양념을 달리해 먹는 것이 특징. 18세기 중엽 일본에서 야채나 가다랭이포 같은 재료로 만들어먹었는데 2차 대전 후 쌀이 부족할 때 UN의 원조 물자로 밀가루가 배급되면서 지금처럼 밀가루에 양배추 해물 고기 등을 넣고 부친 오코노미야키로 발전된 것. 마요네즈나 치즈 등 서양의 재료나 조리법이 가미된 것도 이 즈음부터다.
▲ 먼저 눈으로 먹는다
살랑살랑 바람에 날리듯 춤을 추는 가다랭이포. 오코노미야키를 처음 맞닥뜨린 이들은 한결같이 놀라며 입이 벌어진다. 부침개 위에 얹혀져 있는 가다랭이포, 즉 가쓰오부시가 마치 살아 있는 듯 춤을 추고 있어서다. 가쓰오부시는 가다랭이의 살을 저며 김에 찌고 건조시킨 마른 생선포. 부침개가 뜨거울 때 얹으면 열기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듯 나부낀다.
그 아래 바둑판처럼 쳐진 하얀 줄무늬들은 마요네즈를 뿌린 것, 그리고 진한 갈색의 오코노미야키 소스는 마요네즈의 새콤함에 달콤한 맛을 더해 준다.
▲ 생소하지만 부드럽게 녹아드는 감칠맛
빈대떡도, 피자도 아닌 것이,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든다. 오코노미야키만의 매력이다. 밀가루 반죽부터 부드러운데 소고기나 돼지고기 새우 오징어 야채 등 속재료도 대부분 잘게 썰어져 반죽에 들어간다. 어떤 재료를 얼만큼 넣을지 결정하는 것은 오코노미야키를 먹는 사람의 권리다.
야채로는 양배추 양파 당근 단무지 등이 추가로 들어가고 산마나 다시마 등의 재료들도 오코노미야키 특유의 맛을 내는 소스 역할을 해 준다. 보통 오코노미야키 한 장에 들어가는 재료만 20여 가지. 뜨거운 불에 천천히 부치는데 우리네 빈대떡처럼 자주 뒤집지 않아야만 제 맛이 난다. 오코노미야키는 뜨거울 때 식기 전에 먹는 것이 철칙. 각종 재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더 맛있다.
■ 오코노미야키 맛있게 하는 집
- 동아리 (02)706-3719 신촌로터리
서강대방향
오코노미야키는 일본에서도 음식이 맛있다는 지방, 오사카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힌다. 안주인인 오사카 출신의 일본인 마쯔모토 히토미씨가 오코노미야키의 본고장, 일본 오사카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다.
오사카에서 오코노미야키 전문점을 운영했던 어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은 그녀는 돼지고기와 오징어 새우 굴을 주재료로한 일본식 빈대떡을 만들어낸다. 떡과 치즈를 토핑으로 얹는 것도 특색. 한 장에 9.000~1만4,000원. 일본 사람들도 원조 맛이라고 감탄한다고.
일본에서부터 한국어를 배우다 연세대 어학당을 최근 졸업한 히토미씨는 한국사람과 일본사람들이 함께 모여 식사할 수 있는 곳을 생각해 올 초 이 곳을 오픈했다. 고객의 70% 이상이 일본인일 정도로 본토 맛을 인정받는다. 울면처럼 국물이 걸쭉한 안카케우동, 육회 같은 타타키, 연두부 요리 등 일본 메뉴들을 다채롭게 맛볼 수 있다. 던컨도너츠 바로 옆빌딩 3층에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데 막상 안에 들어가면 일본 냄새가 물씬 난다.
- 담소 (02)543-5080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건너편 파파이스 골목
테이블마다 철판이 있는 철판구이 전문점. 직원이 손님이 보는 앞에서 오코노미야키를 부쳐주는 것을 바로 먹는 맛과 재미가 일품. 맛에 익숙한 단골 손님들은 직접 고른 재료로 철판에서 바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일본에서 수년간 일본 요리를 배워온 주인 임동규씨가 본토에 충실한 빈대떡을 선보인다. 1996년부터 대치동에서 오코노미야키 전문점을 꾸려오다 98년 압구정동으로 둥지를 옮겼다.
생마를 갈아 여러가지 토핑을 넣고 구워 먹는데 내용물에 따라 8가지 종류가 있다. 특제 스페셜 담소1 등이 8,000~1만6,000원. 스테이크구이, 해산물구이 등 철판요리들도 맛깔스럽다. 야키소바와 야키우동 등 철판위에서 구워 먹는 우동 맛도 일품. 5,000~3만5,000원. 투명한 얼음이 담긴 주전자에 정종을 넣어 차게 먹는 술맛은 여성들에게 인기. 한지등과 홍등 인테리어도 분위기에 한몫한다.
- 오코노미야키 (02)742-9526 종로5가
보령약국 골목
일본인에게서 요리를 배운 주인 김정훈씨가 직접 오코노미야키를 부쳐낸다. 철판에 기름을 쓰지 않고 부쳐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데판야키(철판구이) 고유의 오코노미야키 맛을 내는 것이 특징. 철판에 코팅이 돼 있어 기름을 두르지 않아도 달라붙지 않는다.
철판은 두께가 1㎝가 넘는 것을 사용하는데 두꺼워야만 천천히 불이 올라왔다가 천천히 열이 꺼지기 때문. 쉽게 열이 올라오면 쉬 타기 때문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오징어 새우를 넉넉히 넣은 스페셜오코노미야키나 여기에 치지를 더한 치즈오코노미야키가 인기. 8,000~9,000원. 날치알쌈, 시샤모, 사누키우동, 마구로야키 등 일식 메뉴들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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