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각) 낮 아테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서 여성육상 100m 2조예선 경기가 열렸다. 두 다리에 의족을 끼고 달리는 어린 소녀가 눈에 띄었다. 아프가니스탄 대표로 출전한 올해 14살의 마리나 카림이다. 이 소녀는 8명 중 최하위로 골인했다. 기록은 18초65. 1위와는 6초21 차이가 난다. 그는 경기를 마친 뒤 “내가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우리나라에 큰 의미를 갖는다. 조국이 더 좋은 환경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2004년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한 카림은 경기에 나오기 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했다. 아프가니스탄 올림픽대표단 중 최연소자이기도 하다. 선수 4명 등 9명으로 구성된 작은 대표단이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소녀 카림을 통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싹트는 희망을 전세계에 보여줬다.
카림의 삶은 그 자체로 빈곤과 내전에 시달리는 이슬람 국가 아프가니스탄을 상징한다. 어렸을 적 두 다리가 불에 타 절단한 그에게 아프가니스탄의 환경은 비참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형제 자매가 18명이나 되는 그의 가족은 전쟁통에 수도 카불로 피난 왔다. 포화로 무너진 집을 고쳐서 잠잘 곳을 마련했다. 카림은 한동안 학교 공부도 온전하게 할 수 없었다. 옛 집권세력 탈레반 치하의 여성차별 정책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공부해야 했다.
정권 교체 후 카림은 공립학교에 입학한 첫 여성으로 조국에서 유명해졌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밝히는 그이다.
그런 카림에게 올림픽 출전이라는 기회가 왔다. 장애인올림픽위원회 아프가니스탄 사무총장 압둘 바시르가 카림이 다니는 학교를 후원하던 중 그에게 참가를 권했던 것. 카림은 118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나가게 됐다. “가족들이 공항에서 배웅하면서 좋은 경기를 하길,메달을 따길 기원했다”는 그는 메달의 꿈은 이루지는 못했다. 그가 제대로 훈련 받은 기간이라곤 두 달 정도였다. 카림은 그러나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고 “아테네에 오게 돼 행복하고 조국을 위해 뛸 수 있어 행복하다”며 밝게 웃었다. 140㎝, 40㎏의 작고 어린 카림의 행복한 달리기는 아프가니스탄 여성과 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거인의 발걸음이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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