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27)이 영화 ‘우리형’의 꼴통 동생 종현으로 빠져들기 위해 사용한 것은 ‘츄리닝’과 ‘사투리’다. 엄마는 형에게만 마음을 쏟아 형한테는 버버리 재킷(짝퉁이긴 하지만)까지 사주면서, 언제나 츄리닝 바람인 종현한테는 안쓰러운 마음이 없는 듯하다. 수술을 앞둔 형을 향한 엄마의 눈물겹게 따뜻한 눈빛이 부러워 “내가 대신 수술 받을게. 나 축구화 사주면 안되나”고 말하는 종현에게 돌아오는말도 “시끄럽다” 한마디.츄리닝은 찬밥 동생 종현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의상이다. 허나 원빈은 파란색 츄리닝을 입고 방바닥에 누워 엉덩이를 벅벅 긁어대다가도 외출할 때는 빨간 줄이 들어간 검정색 츄리닝으로 날렵하게 갈아입는 등 색색의 츄리닝을 이용한 믹스&매치 패션의 진수를 보여주니, 그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사투리. 강원도 출신인 원빈은 부산 사투리를 능청스럽게도 구사한다. 억센 경상도식 억양에 담긴 ‘X까고 있네’ ‘씨발’ 같은 욕설까지도. “뭐니뭐니 해도 고역은 사투리”였다는 원빈. 부산 출신인 안권태 감독은 사투리 대사를 직접 녹음한 CD를 원빈에게 건넸고, 원빈은 이 CD를 틀어 놓고 죽어라 연습했다. 원빈을 이렇게 고생시킨 사투리는 사실 원빈을 고려한 설정이라는 게 안 감독의 설명이다.
원빈의 이미지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소년이었다. 깎아지듯 가파른 턱선이 자아내는 연약함과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큰 눈은 형 앞에서 의존이냐, 독립이냐를 두고 갈등을 겪는 동생 역(‘킬러들의 수다’ ‘태극기 휘날리며’)으로 그를 고정시켜 왔다. 그 이미지는 군복을 입고서도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서 ‘츄리닝’과 ‘사투리’는 원빈의 소년성을 벗겨내고, 남성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도구였던 셈이다. “종현이는 이전에 연기한 동생 배역과 달리 내ㆍ외적으로 강해요. 드라마 ‘꼭지’에서 연기했던 명태를 생각해 냈죠. 그런데 명태보다도 강인한 느낌이어야 했고, ‘태극기…’의 진석과도 달라야 했어요. 내적인 강함이야 연기를 잘하면 되지만, 외적으로 강한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었죠.”
소년의 그림자를 숨기기 위해 원빈은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스스로 흉터자국을 낸 채 촬영장에 나타났다. 그는 “ ‘우리형’이 딛고 일어설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느 20대 남성처럼 원빈에게도 군복무 문제가 버티고 있다. 말이 워낙없는데다 귀를 쫑긋 세워야 들릴 만큼 소곤소곤 이야기를 늘어 놓는 원빈이지만, 때가 때인지라 군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조금 커진다. “ ‘우리형’을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했죠. 군대야… 늘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거기서 배울 수 있는 집단의 문화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 작품 정도는 더 하고 갔으면 좋겠는데…”
미소년 원빈도 시간이 지나면 아저씨가 될 것이다. “멋진 오빠였었는데 왜 아저씨가 됐어”라고 팬들은 애꿎은 세월을 원망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빈은 나이 먹는 데 대해 도리어 들뜬 듯했다. “많은 역할을 해 본 게 아니라서, 도전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아 좋습니다. 나이가 들면 멜로도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을동화’ 때는 너무 어렸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서 그 역을 하면 다르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륜이 묻어난 연기… 말이죠.”
/최지향기자 misty@hk.co.kr
■영화 '우리형'
보통은 형이 동생을 지배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우리형’에서 그렇다. 형 성현(신하균)은 언청이로 태어났다. 아빠는 성현이 태어난 후 그렇게 좋아하던 사진찍기를 그만뒀고, 다음해 세상을 떴다. 유복자로 태어난 연년생 동생 종현은 고집 세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형을 쥐고 흔든다.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성현의 수술비를 위해 엄마(김해숙)는 일수놀이를 하며 억척스럽게도 살았다. 엄마는 늘 성현이 안됐다. 게다가 성현은 늘 1등이고, 서울대 의대에까지 진학하니 자랑스럽다. 반면 종현은 싸움꾼이고, 대학입시에도 떨어진다. 영화는 언청이 형을 창피해 하던 종현이 형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영화의 시공간성이 매우 모호하다는 것. 설정은 1990년대 후반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80년대 또는 70년대까지도 왔다 갔다 한다. 종현(원빈)의 여자친구 미령(이보영)이 들고 있던 시집 ‘홀로서기1’이나, 미령에게 어깨를 들이대며 “기대라” 하는 장면은 거의 신성일 시대 분위기다.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가게들, 오래된 버스가 다니는 좁은 도로 등이 만들어 내는 영화의 공간 역시 부산이라는 대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령의 자작시 ‘아스피린’이 자아내는 노골적인 촌스러움도 마찬가지다.
묘한 이질감에 대해 안권태 감독은 “의도된 바”라고 말한다.“90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70, 80년대의 정서를 담아내려 했다”고 한다. 추억을 자극하는 의도가 노골적이긴 하지만 형제들의 우애와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시대를 관통해 온 보편적인 주제에 연도가 무슨 상관일까도 싶다. 10월8일 개봉. 전체관람가.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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