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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너무 예술적으로 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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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너무 예술적으로 하지 말 것"

입력
200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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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른 음반매장에서 우연히 유학시절 스승의 음반을 발견했다.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DVD로 만든 것이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스승의 음반은 평생 동안의 그의 음악을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미하엘 길렌, 1929년 생으로 유대계 독일인인 스승은 독일과 유럽의 유수 오페라극장과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과 상임지휘자로 일했다. 특히 현대음악 분야에서 독보적 자질을 발휘하여, 수많은 현대관현악곡과 오페라를 초연했다. 유럽에서 A급 지휘자의 지위를 누리면서도, 상대적으로 대중성을 일찍 얻지못한 이유는 결벽증에 가까운 악보 위주의 절대 구조적 해석 탓이었다. 그의 지휘는 단조롭고 딱딱하며 철저히 악보 위주였다.

나의 첫번째 오케스트라 연습을 지켜보고 해준 충고도 “너무 예술적으로 지휘하지 말 것” 이었다. 이런 독특하며 고집스러운 음악관으로 인해 많은 반대파를 몰고 다녔다. 내가 직접 지켜본 빈 필 리허설에서 그는 전통적인 스타일을 고집하는 빈 필 단원들과의 마찰도 피하지 않았다. 그러다 급기야 빈 필이 기피하는 두 지휘자 중 한 명의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그래도 타협하지 않았다.

10년 만에 화면 속에서 만난 특유의 절제된 동작, 그러나 그 안에서 표현되는 스승의 음악은 또 다른 경지의 베토벤이었다. 평생을 바친 장인의 솜씨로 빚어낸 것이었다.예술가로서 자신만의 세계를 확립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더욱 힘든 일은 그런 자신의 세계를 평생 흔들리지 않고 구현해내는 것이다. 스승은 진정한 예술가 정신을 자신의 인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물질만능과 대중성의 유혹 속에 한없이 흔들리는 제자에게는 부끄러움만이 남았다.

박영민/지휘자ㆍ추계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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